"답은 '현장'에 있었습니다."
2주간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 파배달꾼으로 일한 손경호(지디넷코리아 기자)씨는 "쉴 새 없이 포장 작업을 계속하다 보면 나중에 손아귀에 힘이 빠져 결국 손을 벌벌 떨며 밥을 먹었다"고 회고했다. 역시 2주 동안 텔레마케터를 체험한 이보라(뉴스토마토 기자)씨는 "1,000명 넘는 남자와 통화한 뒤엔 남자친구조차 지겨웠다"고 고백했다.
기자로 활동하는 이들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출신. 이 학교 졸업생들과 기자를 꿈꾸는 예비 언론인들이 발로 뛴 기사들을 엮어 <벼랑에 선 사람들> 이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2010년 이 학교가 학생들의 기자 교육을 위해 만든 온라인 신문 '단비뉴스'가 1년 반에 걸쳐 연재한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을 재구성 한 것이다. 벼랑에>
기성 언론에선 충분히 다루지 않는 빈곤의 현장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밀착 취재하자는 창간 취지를 반영해 취약 계층의 노동·주거·보육·의료·금융 불안을 집중 조명했다. 생생한 목소리를 담을 수 있다면 쪽방, 고시원, 비닐하우스를 가리지 않고 찾아가 주민들과 살을 부대꼈다. 현장성에 비해 대안이 부족한 르포의 단점을 보완하려고 전문가 진단이나 해외 사례 취재도 신경 썼다.
대안 언론으로 분류되는 '단비뉴스'의 매체 성격은 취재에 도움이 되긴 했지만 때론 마이너스가 됐다. 학생들은 "제도권 언론이 아니어서 취재원을 확보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인터넷 카페나 트위터를 이용해 어렵게 구한 취재원이 금세 마음을 돌리는 일도 허다했다.
'아프면 망한다'를 주제로 난치병 환자 관련 기사를 쓴 양호근(27)씨와 정혜정(25)씨의 전언. "취재에 응하면 후원금 받는데 도움이 되는지 물어보는 분들도 계셨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는 매체 영향력이 그다지 크지 않으니 도와드릴 수 없다'고 솔직하게 말씀 드리고 발길을 돌려야 했어요. 정부 관계자를 취재할 땐 학생 신분에서 오는 한계도 있었습니다."
2년 전 여중생을 빈 집으로 끌고 가 성폭행하고 살해한 '김길태 사건' 현장을 찾은 김승태(26)씨는 "주민 이야기를 듣기위해 문 앞에 서서 2시간이나 설득했다"고 고충을 털어 놨다.
학생 기자였기에 만날 수 있었던 취재원들도 있었다. 학생들의 순수한 의도가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빚 독촉에 시달리는 사람들 기사를 쓴 이지현(26)씨는 "기성 언론이었으면 이야기 안 했겠지만 학생이니까 인터뷰 하겠다"고 허락하는 취재원을 어렵게 구할 수 있었다. "취재원과 처음 만날 때 '접선'하듯이 만났어요. 빚 독촉에 워낙 시달린 탓에 연락처도 알려주지 않아 이메일로만 연락했고요. 만나기로 한 날짜에 약속 장소로 나가니 회색 봉고차 한 대가 서 있는데, 순간 이상한 사람이 아닐까 겁도 났죠."
맨땅에 헤딩하듯 현장에 뛰어든 이들의 노력은 독자들이 먼저 알아 봤다. 인터넷 게재 기사는 수십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2010년엔 '시사IN' 대학기자상 대상을 받았다. 심사위원들은 "현직 기자들도 질릴 지독한 현장성을 담았다"고 평가했다. 1기부터 4기까지 졸업생 중 기자도 여럿 나왔다.
예비 언론인들의 바람은 하나다. "직업 언론인이 돼서도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을 끌어 안는 기사를 쓰고 싶어요."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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