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삿날에 임 비장과 고을 아전 몇 사람이 먼저 손님으로 왔고, 오 동지는 견마 잡힌 세마를 타고 하인을 앞세워 왔으며, 빈 사인교를 가마꾼과 함께 세내어 왔다. 내일 신행 갈 제 나를 데려갈 차비인 셈이었다. 그를 따라서 삼례에서도 오 동지의 술친구 두엇이 따라왔다. 동지라고 해봤자 벼슬 직임도 아니고, 나라 형편이 어려울 제 공명첩을 사면 전국 각지의 밥술깨나 먹는 토호들에게 나눠준 체면치레라, 향교의 지방 양반 행세하는 이들과는 격이 달랐다. 그러니 아전이며 장사치들도 트고 지내던 것이다. 낮에는 동지 어른이오, 밤에는 상것이라고 모두 우스갯소리를 하는 판이었다. 전안지례(奠雁之禮) 따위는 없으니 청사초롱 홍사초롱 기러기아비도 기러기도 없었다. 대청에다 자리 깔고 상 위에 술잔과 술 주전자 올려놓고 쌍촛대를 밝혔을 뿐이었다. 손님들은 모두 건넌방에 교자상 둘을 붙인 술상 앞에 모여 앉아 있었다. 오 동지는 신랑의 사모관대 대신 갓에 두루마기 평복 차림이고, 나도 활옷이니 원삼이니 족두리 모두 폐하고 노랑 저고리 붉은 치마를 입었다. 고을 아전 중의 하나가 집사를 맡아서 마루 위편에 서서 이르는 대로 나는 찬모와 동네 아낙의 부축을 받아 두 번 절하고 동지가 한 번 절하여 응대했다. 합환주를 주고받고 다시 절을 나눈 뒤에 집사가 백년해로를 축수하고 모두 끝났다. 그야말로 순식간이어서 나는 신방으로 정해둔 상방에 들어가 앉았다. 벌써 이부자리는 펴놓았고 건과육포며 약주며 자리끼 등속을 차린 소반을 옆에 두고 앉아 있는데, 엄마가 방문을 살그머니 열더니 얼른 들어와 이불 밑에 손을 넣어보았다.
에그 따스해라, 불이 잘 들었나부다. 어디 몸은 괜찮고?
이러구 언제까지 앉아 있어야 해? 나 먼저 자버릴까?
큰일 날 소리, 신랑이 올 때까지 고대로 방을 지켜야 되는 법이다. 뒷간에두 가면 안 된다. 조기 샛별 요강 있으니 거기다 볼 일 보고.
내가 술을 한 잔 따라서 쭉 마시고 생률 한 쪽을 먹었더니 엄마가 다시 호들갑을 떨었다.
술 먹지 말구 기다려. 니가 취하면 첫날밤을 망치는 거여.
엄마가 방 안을 한 바퀴 빙 둘러보고 나가려다가 문가에서 멈춰서더니, 고개를 갸웃하고는 내게 물었다.
너 혹시…… 무슨 일 있었냐?
나는 엄마의 그런 눈초리를 평소에 잘 알던 터라 새침하게 받았다.
달거리두 피했구, 목욕재계 다했구, 일은 무슨 일?
너 맘에 두고 있던 녀석 따루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런 거 다 소용없더라. 애 낳고 살아보면 모두 그놈이 그놈여. 처음 치르는 일도, 내가 일러준 대로만 하면 염려할 것 없다. 그저 잠깐 참으면 되느니라.
나는 참지 못하고 엄마에게 물었다.
이 서방 언제 다시 온다구 합디까?
뜬금없이 웬 이 서방?
나가려던 엄마가 내게 달려들 듯이 날렵하게 마주앉더니 내 손을 잡아 흔들었다.
이신통이하구 무슨 일이 있었지? 그놈 다녀간 뒤부터 한숨만 폭폭 쉬고, 니 꼴이 수상하다구 생각했다만……
나는 실실 웃으며 말했다.
엄마는 뭐 정인이 없었나?
이것아, 오 서방이 보내온 니 머리 얹는 값이 얼만 줄이나 아냐? 자그마치 이백 냥이야. 기와집 두 채 값이라구.
누가 기생 어미 아니랄까봐 엄마의 그런 말이 내 속을 뒤집어놓았다.
그래서 이렇게 팔려서 시집가는 거 아닌감? 그 돈 받아 잘먹구 잘살어.
엄마는 한숨만 푹푹 쉬고 앉았다가 끙 하며 일어났다.
안 되겠다. 오 서방에게 소주를 나우 먹일밖에……
자정이 넘어서야 손님들의 술자리가 끝났던지 오 동지가 술 취한 트림을 연방 터뜨리며 툇마루에 오르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그동안 술을 반주전자쯤 꼴깍대며 마신 끝이라 술이 제법 알딸딸하게 취해 있었다. 그가 들어서더니 갓이며 겉옷을 훌렁훌렁 벗고는 내게로 달려들어 저고리 고름을 움켜잡았다.
아이, 왜 이리 서두르셔요. 먼저 누우세요.
오 동지가 웃통을 벗고 바지 대님은커녕 버선도 벗지 않고 요 위에 벌러덩 자빠지더니, 내가 저고리 벗고 치마끈 풀고 속치마를 내리다가 보니 벌써 코를 높이 골며 술잠에 빠져 버렸다. 애고, 잘코사니야! 나는 적삼에 고쟁이 바람으로 소반을 끌어당겨 남은 술을 다 먹고는 신랑 대신 촛불을 불어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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