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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식의 세상만사] 훔쳐보기 즐거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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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식의 세상만사] 훔쳐보기 즐거웠나요?

입력
2012.04.11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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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끝났다. 승패가 갈리고 나면 그 동안의 열띤 공방과 구호도 잠잠해져 잊혀진다. 공약이 '공약(空約)'으로 바뀌고, 후보들을 괴롭힌 자질 논란도 잦아든다. 표에 특별한 정화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더 이상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선거전 중반까지 최대 쟁점이었던 '민간인 불법 사찰' 문제는 예외다. 우선 스스로 '몸통'임을 외친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의 배후,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에 건네진 1억1,000만원의 출처 등에 대한 국민 관심이 크다. 현재진행형인 검찰 수사에서 새로 드러나거나 확인될 사실도 관심거리다. 여야의 '특검ㆍ'특수본' 줄다리기와 이 문제가 유권자의 정치의식에 미칠 영향을 감안하면, 적어도 연말 대선 때까지는 여야 공방의 소재가 될 전망이다.

지난해 6월 MBC PD수첩이 김종익 KB한마음 대표에 대한 국무총리실의조사를 알리면서 모습을 드러낸 사건에 대한 세상의 관심은 그 동안 적잖은 변화를 겪었다. '영포목우회'의 개입과 남경필ㆍ정두언 의원 등에 대한 사찰 정황이 드러나면서 한동안 여권 권력투쟁이 눈길을 끌었고 'SD 라인'이 다시 의혹의 도마에 올랐다. 이어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 검찰 수사와 관련문서 파기 등 조직적 은폐 의혹이 일었다. 뜸했던 관심은 지난달 민주당의 녹취록 공개로 다시 불붙었고, 이 전 비서관의 '몸통' 기자회견으로 진정한 몸통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KBS 새 노조가 '리셋 KBS 뉴스 9'를 통해 2008~2011년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작성한 2,616건의 '민간인 사찰 결과'문건을 공개하고, 청와대가 그 80%는 노무현 정부 당시 작성된 것이라고 반박한 이후 '청와대의 거짓말' 여부에 이목이 쏠려있다.

일련의 의혹과 관심을 관통하는 것은 '정권 안보를 위해 민간인 사찰까지 자행하느냐'는 분노다. 그 핵심은 역시 '민간인'이다. 정치 권력 또한 생물처럼 스스로의 안위를 가장 먼저 살피기 마련이어서, '민간인'이 빠진 '정권 안보'라면 정치적 비난은 몰라도 정순한 분노의 대상이긴 어렵다. 민주화 20년이 넘은 지금까지 권력에 의한 전근대적 기본권 침해가 이뤄진다면, 일상을 제쳐두고 다투어야 할 근본문제다.

그런데 KBS 노조의 문건 공개 이후 이런 합리적 관심이 적잖이 뒤틀린 듯하다. 청와대의 지적과 KBS 노조의 사과로 확인된, 지난 정권의 문서를 제대로 가려내지 못한 건 그리 대단한 문제가 아니다. 핵심 관심사인 '민간인 사찰'관련 문건을 제대로 추리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후속 언론보도가 무차별적 내용 공개로 치달은 무신경이 더 큰 문제다.

경쟁적 보도 이후 KBS를 비롯해 MBC, YTN 등 '범 공영방송' 사장의 '정권 충성도'나 성향에 대한 문건 내용이 언론계에서 화제가 됐다.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경찰에서는 역대 경찰청장에 대한 보고, 군에서는 국방장관과 차관에 대한 내용을 안주로 삼았으리라는 짐작이 간다. 내용 자체는 한심한 수준이어서 그것이 '정권 안보'나 '공직 기강'에 무슨 도움이 될까 싶지만, 당사자들로서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명예나 인격의 손상을 느꼈을 만하다.

'민간인 사찰'에 대한 애초의 관심이 보호하거나 지키려고 했던 기본권을 침해한 모순이 뼈아프다. 또한 남의 일을 엿보거나 훔쳐보려는 병적 욕구를 충족한 이후의 사회적 관심이 그 이전의 관심과는 다르리라는 점에서 그 변질이 걱정스럽다.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우선 떠오르는 게 2005년의 이른바 '안기부 X파일'소동이다. 국민과 언론의 관심이 정보기관의 불법적 도청 행위에 집중되길 빌었지만, 결국 도청 내용이 모두 까발려졌다. 목적만 정당하면 수단ㆍ절차의 적정성은 팽개치고 마는 고질적 풍토다.

반쯤은 자문하듯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 본다. 훔쳐보기가 그리도 즐거웠나요?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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