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은 매섭고 무서웠다. 말도 많고 탈도 많고 돌발 변수도 많았던 19대 총선에서 국민이 표로 보여준 민심은 정권 심판보다 민주통합당에 대한 질책과 경고로 나타났다. 거센 정권심판 기류 속에 열세에 몰렸던 새누리당이 개표 결과 과반 의석을 넘나들며 제1당을 차지한 것은 민주당의 오만과 안이함, 무절제에 대한 국민의 냉엄한 평가로 봐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에 실망한 국민에게 민주당이 대안세력으로 믿음을 주지 못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명박 정권과 새누리당은 지난 총선에서 싹쓸이하다시피 했던 서울에서 패배한 점은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 홍준표 전재희 차명진 이재오 정두언 등 친이계 핵심이 낙선하거나 고전한 것은 정권심판 정서가 그만큼 확산됐음을 보여주었다. 사회적 양극화, 청년 실업, 노후 불안 등 서민들의 삶이 피폐해진 데다 인사 난맥상, 대통령 주변 비리, 내곡동 사저 논란,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등 숱한 실책과 악재에 급기야 민간인 사찰 문제까지 터졌기 때문이다. 집권 명분인 경제분야에서 국민의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민주와 소통, 화합의 흐름에 역류하는 행태를 유권자들이 심판한 것이다.
그러나 국민은 민주당을 더욱 통렬하게 심판했다. 민주당은 18대 총선의 81석보다 훨씬 많은 의석을 얻어 언뜻 약진했지만, 자신들의 실력보다는 반사이익을 챙긴 측면이 크다.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새누리당은 탄핵 열풍이 불었던 17대 총선의 121석만 얻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비관적이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도 민주당은 공천 실책, 지나친 좌 클릭, 취약한 리더십으로 인해 새누리당보다 20여 석이나 적은 의석에 그치는 참담한 결과를 맞았다.
무엇보다 서울 노원갑의 세습 공천에 이은 김용민 후보의 막말 파문에서 드러난 민주당의 명분 없고 우유부단한 태도는 처절한 반성이 필요하다. 출당 조치조차 취하지 못한 한명숙 대표 등 지도부는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전략적으로는 시류가 진보 쪽으로 기우는 듯하자 진보 정당보다 더 좌파적 입장을 취하면서 중도 지지자들의 이탈을 초래한 것은 중대한 판단 착오였다. 2년 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도지사가 나오는 등 지지세가 확대되던 충북과 강원에서 패배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같은 총선 결과는 향후 정국에서 각 정당과 대선 주자들이 취해야 할 노선과 처신을 일러주고 있다. 눈 앞의 이익에 혹해 왔다갔다하는 일관성 없는 처신, 주장하는 정책과 비판하는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모르는 무지, 실현가능성이 희박한 장밋빛 공약은 냉혹한 검증을 받을 것이다. 국민은 복지 확대를 바라면서도 재정 안정과 지속적인 성장 가능성을 염려한다. 이것이 친이 세력을 심판하면서도 야권을 질책한 총선 민심임을 명심해야 한다.
정치 현안을 둘러싼 쟁투도 마찬가지다. 당장 민간인 사찰에 대한 국회 청문회와 특별검사 임명을 둘러싸고 여야는 힘겨루기에 매달릴 것이다. 돈봉투 사건과 디도스 공격 등 매듭되지 않은 현안들도 격렬한 대립을 초래할 것이다. 어떤 현안에서도 8개월 후의 대선을 염두에 둔 정파성만 드러내고 나라 장래를 걱정하는 진정성이 없을 경우 국민은 외면할 것이다.
이번 선거는 본질적 과제도 남겼다. 무엇보다 정책 논쟁이 실종된 점이다. 선거전은 시종 네거티브 공세와 이념 공방으로 점철돼 최선도 차선도 아닌 차악의 선택으로 전락했다. 우리 정치가 아직도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의미다. 지역구도를 깨뜨리지 못한 것도 아쉽다. 대구 수성갑에서 민주당 김부겸, 광주 서갑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선전했지만 당선 문턱에서 좌절했다. 그러나 두 후보가 40% 안팎의 득표를 한 사실은 지역구도 극복의 단초로 높이 평가하고 싶다.
낮은 투표율도 깊은 우려를 낳았다. 역대 최저 투표율 46.1%를 기록한 18대 총선보다는 높았지만 54.3%의 투표율은 OECD 평균 70%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일부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투표 불참자 벌금 등 적극적 대책을 모색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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