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기고/ 저작권 책임을 학생에게 떠넘기는 대학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기고/ 저작권 책임을 학생에게 떠넘기는 대학

입력
2012.04.11 12:20
0 0

새학기 들어 전국의 대학에서 수업시간에 이용할 자료조사와 복사를 학생들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기사를 최근 접했다. 기사를 보고 방문한 주요 대학의 홈페이지에는 "수업교재를 복사해서 사용하게 될 경우 교수가 직접 복사ㆍ배포하지 말고, 학생들이 개별적으로 찾아서 사용하도록 하라"는 이상한 공지사항이 게시되고 있었다. 공지사항을 따라가 보니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한국원격대학협의회 등이 연합해 '수업목적저작물 보상대책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내용의 공문을 각 대학에 배포했다는 공지가 올라와 있었고 대학에 보상금 약정체결을 지양하라는 요청을 하고 있었다.

대학들이 연합해 이러한 이상한 행동을 하는 이유가 뭘까. 바로 학생 1인당 3,000원 수준의 저작권료를 아끼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으로 대학은 돈을 아끼고, 저작권에 대한 법적 책임을 학생에게 전가시킬 수는 없다. 학생이 수업에 필요한 자료를 직접 찾다 보면 시간과 돈이 몇 배로 들기도 하고, 아무리 찾아 헤매도 원하는 자료를 못 찾을 때도 있는데, 대학은 돈을 아낄 목적으로, 비싼 등록금을 내고 공부하는 학생들의 수업권을 무참히 짓밟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을 범법자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저작권법 제25조에 따라 대학수업시간에 이용되는 저작물에 대해 저작권자의 이용허락을 받지 않아도 되는 대신 이용자인 대학은 법에 정해진 보상금을 납부할 의무를 가지며, 이 보상금은 저작권자에게 돌아간다. 보상금 지급 수준은 저작물 이용시장의 실거래 가격에 비해 턱없이 적은 금액이지만 저작권자들이 교육의 공익적 목적을 배려해 양보에 양보를 거듭한 결과로 제시된 것이다. 국내 저작물뿐만 아니라 해외 저작물 까지도 이용 가능 범위에 포함 된다. 그러나 그렇게 정해진 금액마저도 대학은 "못 내겠다." 하고 있고, 이에 따른 모든 책임과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의 몫이 되어버린 것이다.

대학은 그들이 수업목적 보상금 약정을 거부하고 나선 것에 대해 "금전적인 문제가 아니며 보상금제도 자체가 최근 대학교육의 트렌드와 맞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에서 대응에 나선 것"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보상금 제도가 등록금의 인상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는 일부 대학의 교수들을 보면, 이 보상금 제도가 그 금액의 다과를 떠나서 한국 대학의 금전적인 문제임이 분명하다. 더불어 대학은 그 비용이 아까워 전혀 부담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디지털 환경 속에서 멀티미디어의 빈번한 활용, 그리고 그와 관련한 콘텐츠의 이용이 증가되고 있는 최근의 대학교육 추세와 보상금 제도가 잘 맞지 않는다는 주장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으므로 그냥 난센스라고 해두겠다.

고등교육법 제28조에는 대학의 목적에 대해 '대학은 인격을 도야하고,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심오한 학술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국가와 인류사회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몇 푼의 돈을 아끼려고 연간 1,000만원에 육박하는 등록금을 내고 향학열을 불태우는 학생들에게 불법을 자행하도록 하는 대학은 법에서 명시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조금이라도 하고 있는 것인지 반성해야 할 때다.

내 블로그에 올려놓은 사진과 글도 다른 사람이 복사하지 못하도록 막아놓는 것이 요즘의 세태다. 각고의 노력을 들여 저작한 교수의 교재를 다른 교수가 무단으로 복사해 이용하고 게시판에 올린다면 저작권자의 기분이 어떨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수업시간에 타인의 저작물을 무단으로 이용하겠다는 생각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저작권료는 불로소득이 아니다. 저작자의 재산권이자 창작의 노력과 결실에 대한 정당한 대가이다. 지금은 대학이 목전의 상황을 회피할 때가 아니라, 사회가 대학에 원하는 사회적 책무가 무엇인지, 어떻게, 누구 덕분에 지금의 사회적 위치를 갖게 되었는지를 다시금 돌이켜 보아야 할 시점이다.

정홍택 국제저작권기술콘퍼런스 조직위원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