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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총선 여론조사 짚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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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총선 여론조사 짚어보기

입력
2012.04.1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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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에서도 변함없이 수십 개의 여론조사기관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언론은 이런 정보를 인용하며 판세가 혼전이라는 둥 마치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듯 보도에 열을 올렸다. 결과가 상반된 여론조사들은 오히려 유권자들의 혼란을 부추기기도 했다. 우리는 여론조사를 과연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을 다시 한 번 갖게 된다.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지금 집전화도 없애는 시대, 집전화가 있더라도 밤늦은 시간을 빼고는 집 밖에서 주로 스마트폰과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를 이용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시대에 일반 전화번호부에서 표본을 추출하는 조사는 한계를 지니기 마련이다.

응답률은 어떤가? 일부 여론조사는 응답률이 한자리 수에 그친다는 말도 들린다. 100명이 전화를 받고 5명이나 10명 미만이 응답하는 조사를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표본을 구성할 때 성별, 연령, 직업군 등 다양한 투표영향 요인들을 반영해 지역구를 잘 대표할 수 있게 설계하면 적은 표본으로도 훌륭한 예측력을 가질 수 있기도 하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가.

더구나 요즘은 전화를 받는 응답자들조차도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히기를 꺼려하는 경우가 많다. 바로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정부의 사찰을 받거나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미네르바나 김종익씨 사찰건 등은 국민들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때로는 응답자가 의도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 총선 후보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에서는 일부 후보 측에서 지지자들에게 ‘나이를 속여 답변하라’는 지침까지 내렸다는 보도도 있었다.

수치로 표현된다고 반드시 좋은 정보는 아니다. 잘못된 여론조사는 여론에 대한 건전한 판단을 방해한다는 측면에서 ‘오정보’이고, 정치적인 동기 또는 의뢰자의 이익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측면에서 ‘역정보’이다. 만약 전쟁터에서 이런 정보에 의존하면 곧 죽음이다. 그러나 당과 당, 후보자와 후보자가 충돌하는 선거판에서 여론조사는 변함없이 위세를 떨치고 있다. 최근 수년간 여론조사의 실패는 계속되었지만, 정당들은 여전히 여론조사 결과에 의존해 후보를 단일화 하기까지 한다.

선거 여론조사는 좁은 바닥에서 미세하게 움직이는 민심을 측정해야 하기 때문에 지극히 어려운 작업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무리 후보가 난립해도 많아야 두세 명의 유력 후보 중에 누가될 것인가를 예측하는 ‘쉬운’작업이기도 하다. 제대로 표본만 추출한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정보를 생산해서 선거 결과를 잘 예측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일부 조사기관들은 임의로 전화번호를 추출하는 방식이나 장기간에 걸쳐 특정한 사람들의 태도 변화를 추적하는 패널 조사를 이용하기도 한다. 이마저도 결코 완벽하진 않지만, 기존 여론조사 관행에 관한 근본적인 혁신을 추구하는 몸부림을 보여준다는 차원에서 환영 할 만하다.

사실 위에서 제기한 문제점은 우리나라의 선거 여론조사 기법이 선진국에 비해 유난히 낙후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과다한 경쟁으로 인한 덤핑 조사나 다매체 시대가 초래하는 표본 구성의 어려움은 전세계 여론조사업이 공통적으로 직면한 문제다.

대처방안으로는 여러 가지가 거론된다. 현재 20%선에 머물고 있는 휴대전화 여론조사를 활성화하는 일도 시급하다. 특히 이동통신사들이 보유한 휴대전화 번호 목록을 가공한 뒤 국가의 철저한 통제하에 조사기관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조사를 거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간단히 전화 한 통으로 모든 여론조사에서 빠질 수 있도록 선택권도 줘야 하고, 주민등록번호나 개인 식별 가능 정보는 철저히 보호되어야 하겠다.

정치적인 의견 표명을 좀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쉽다. 이는 취합되는 정보의 진실성을 담보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정부나 여당의 방침에 거스르면 온갖 구닥다리 같은 법률을 적용하려 처벌하려 든다면, 누가 자신의 마음을 낯선 이에게 털어놓을 것인가.

김장현 미국 하와이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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