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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중독 영아 살해·유기 20대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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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중독 영아 살해·유기 20대의 눈물

입력
2012.04.10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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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유일한 창이었어요. 사춘기 시절 마음을 잡지 못할 때 게임만이 위안을 줬습니다. 하지만 게임에 빠져 아이가 태어나는 것도 모를 정도로 중독이 심했죠. 죽은 아이에게 너무 미안할 뿐입니다."

10일 오전 11시 경기 용인시에 위치한 미혼모시설 '생명의 집'. 서울 송파경찰서 강력1팀 이재철 안재희 경사와 함께 찾은 이곳에서 핏기없는 얼굴에 회색 임산부복을 입은 정소라(26ㆍ가명)씨를 만날 수 있었다.

지난달 25일 서울 송파구 삼전동의 한 PC방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은 뒤 질식사시킨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정씨. 그는 영아 살해 및 사체 유기라는 무시무시한 범죄의 가해자인 동시에 세상에서 외면 당한 피해자이기도 했다.

그가 게임에 빠진 것은 참담한 현실을 잊기 위해서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간암으로 죽고 어머니마저 그 충격으로 우울증과 치매 증상을 보였다. 당시 중학생이던 언니가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에서 돈을 벌어 겨우 생활을 꾸렸다.

"마음을 잡고 살아보려 했습니다. 편의점이나 옷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등학교도 졸업했고 회사에 입사 서류도 내봤어요. 하지만 변변한 자격증이 없으니 번번이 퇴짜를 맞았죠." 좌절을 거듭하던 정씨는 2년 전부터는 아예 휴대폰도 없애버리고 지인들과 연락을 끊은 채 게임에만 빠져 살았다.

지난해 4월 게임을 하면서 남자친구 김모(40ㆍ가명)씨를 만났다. 그와 동거하며 임신한 정씨는 결혼해서 안정된 삶을 살고 싶다는 꿈을 꾸기도 했다. 하지만 김씨가 다른 여자와 만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정씨는 지난 2월 그의 집을 나왔다. 그때부터 다시 끔찍한 생활이 계속됐다.

임신한 몸으로 PC방과 사우나를 전전하며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괴로움이 커질수록 게임에만 몰두했다. "산통이 느껴질 때도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어요.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 보니 아이가 태어나 있었습니다." 겁이 난 정씨는 검정색 비닐봉지에 아이를 넣어 밀봉하고는 인근 모텔 화단에 버렸다. 아이의 시신은 지난달 28일 발견됐고 정씨는 송파서 강력팀 형사들에게 지난 3일 붙잡혔다.

형사들의 고민은 오히려 정씨를 붙잡으면서부터 커졌다. 정씨의 몸 상태를 고려해 불구속 입건했지만 검찰 송치 전까지 기거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이 경사는 "여러 미혼모시설에 전화를 해봤지만 영아 살해 피의자를 맡아주겠다는 곳은 없었다"고 말했다.

수소문 끝에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여성들을 맡아 도와주는 용인 생명의 집을 찾아냈다. 형사들은 주머니를 털어 생명의 집에 후원도 하고 식료품도 기부했다. 생명의 집 운영자인 양 이다마리아(45) 수녀는 이날 "조금만 더 일찍 이곳을 찾았더라면 끔찍한 일은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며 정씨의 손을 꼭 잡았다.

정씨는 "죗값을 치르고 나면 조리사 자격증을 따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다"며 눈물을 훔쳤다. 정씨가 이곳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도운 이병국 송파서 형사과장은 "범죄자를 검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다시 극단으로 내몰려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경찰도 그들을 돕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용인= 글ㆍ사진 박철현기자 k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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