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운전 기사는 사람도 아닙니까?"
경기 용인 지역의 한 대리운전업체가 업무지시에 항의했다는 이유로 소속 기사에 대해 2050년까지 운행제한조치(락ㆍlock)를 내려 논란이 일고 있다. 한 대리운전업체가 기사에 대해 '락' 조치를 하면 이 업체와 교류관계에 있는 다른 업체에까지 자동 통보돼 사실상 해당 기사는 영업이 불가능해진다.
2006년부터 대리기사 일을 해온 이모(52ㆍ경기 성남시)씨는 지난해 1월 Y업체로부터 "용인 동백에서 상현동으로 가는 손님을 1만5,000원에 모셔라"는 콜을 받았다. 이씨가 도착해 보니 목적지가 상현동이 아닌 신봉동이었다. 이곳은 조금 외진 곳인데다 당초 목적지와 달랐기 때문에 이씨는 손님에게 양해를 구한 뒤 회사에 배차 교체를 요구했다.
하지만 업체 측은 "강남이었어도 안 갈 거냐? 그냥 가라"고 요구했고 이씨는 수수료 20%, 걸어서 돌아오는 시간 30분, 새로운 콜을 기다리는 시간 등을 감안할 때 도저히 갈 수 없다며 20여분 동안 배차 취소를 요구했다. 그 사이 손님은 가버렸고 결국 이씨는 운행을 포기한 채 콜 완료처리(대리운행을 마친 뒤 회사에 수수료 20%를 내는 것)를 했다.
이씨는 다음날 일을 하려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콜이 안 들어와 이상하게 생각하던 중 자신이 이 업체에 의해 락이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제한 기간은 무려 2050년까지였다. 이씨가 102세 되는 해다. 업체는 "항의하는 과정에서 욕설을 했다"고 락을 건 이유를 설명했다. 이 업체는 교류 업체들에도 이를 통보해 성남, 용인, 광주와 서울 일부지역 등 무려 250개 대리운전업체가 이씨를 고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사실상 업계를 떠나라는 사형선고였다.
이씨는 이후 후배 명의로 새로 대리기사로 등록해 일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또 한번 락이 걸리면 이제는 정말 다른 일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손님이 화를 내도, 업체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무조건 참는다. 이씨는 "건축 관련 일을 하다 대리기사를 시작했는데 그때처럼 나 자신이 초라해 보인 적이 없었다"며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에 콜을 알려주는 I프로그램 회사로부터 락 조치된 기사를 일괄 구제해준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했으나 3일 뒤 Y업체에 의해 다시 락이 걸렸다. 업체 측은 "우리 마음이다"라며 이씨의 항의를 일축했다.
이 업체 관계자는 "우리 회사가 락 조치한 대리기사가 20~30명은 될 것"이라며 "기사들이 상습적으로 회사에 피해를 주거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경우에만 락을 걸었을 뿐 감정적으로 대응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대리운전 업계에서는 노동계의 블랙리스트 같은 락 조치가 남발되는 것은 열악한 업계 환경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영세한 업체들 간에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넘쳐나는 기사에 대한 처우가 열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바른노무법인 강도영 대표는 "대리기사는 사용종속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근로자로 볼 수 없다"며 "이 때문에 명백한 취업 방해에 해당하는 락 조치를 당해도 근로 관련 법률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현재 전국적으로 5,000여 개의 대리운전업체가 영업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등록 대리기사만 7만5,000~8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이범구기자 eb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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