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부터 다섯 살짜리 딸을 경기 시흥시의 한 사립유치원에 보내는 직장인 박정미(가명ㆍ35)씨는 유치원비 영수증만 보면 한숨이 나온다. 교육비(25만원)를 포함해 급식비 재료비 특별활동비 등 한 달에 유치원에 들어가는 돈만 57만원이 넘기 때문. 박씨는 "유치원비가 비싸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언제 자리가 생길지 모르는 공립유치원만 기다리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사는 임현옥(가명ㆍ34)씨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임씨는 한 달에 85만7,000원을 6살 난 딸아이 유치원비에 쓴다. 임씨는 "당장 아이를 맡길 곳은 없고 출근은 해야 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비용을 감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올해부터 만 5세 누리과정(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두루 적용하는 공통 교육과정)을 도입하며 '무상교육'이란 표현을 쓰고 있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5세 원아 한 명당 월 20만원의 정부 지원금을 받으면서도 부모로부터 대학등록금 수준인 연간 1,000만원의 유치원비를 받는 사립유치원이 적지 않다. 정부가 국고를 지원하면서 정작 교육비 가이드라인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는 보건복지부가 매년 어린이집 보육료의 기준금액을 제시해 상한선을 두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어린이집은 보육료 뿐만 아니라 특별활동비까지 시군구별로 상한선을 둬 일정 금액을 넘겨 받지 못하게 하고 있다.
반면 교육비에 아무 규제가 없는 유치원들은 특별활동비, 종일반비, 차량운행비 등의 명목으로 교육비를 편법 인상해 학부모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경기 양평에서 7살 딸과 5살 아들을 유치원에 보내는 회사원 이모씨는 "지난해까지 큰 아이는 한달에 27만원, 작은 아이는 29만원 가량 냈는데 올해 들어 차량운행비(1만6,000원)가 새로 생겼고, 특별활동비는 6만원에서 9만원으로 올랐다"고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는 "그동안 사립유치원은 국가 보조가 없었기 때문에 규제 없이 자율에 맡겨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2년 전부터는 교사 처우개선비 등이 지원되고, 올해부터는 누리과정 교육비도 지원돼 상황이 달라졌다. 교과부는 올해 유치원 교사 처우개선비로 1,486억원, 유치원 운영비로 587억원 등 총 2,073억원을 지원한다. 누리과정 예산은 유치원과 어린이집 지원금을 모두 합쳐 1조1,085억원에 이른다. 내년에는 누리과정 적용대상이 만 3,4세로 확대된다.
이에 따라 유치원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포함해 사립유치원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연승 경성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앞으로 정부의 지원 예산을 늘리면 교육환경과 회계투명성에서 교과부가 정한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립유치원은 삼진아웃제를 실시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국교직원노조 관계자는 "개인 재산으로 인식되는 유치원을 법인화해 과도한 교육비가 들지 않는 유아교육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립유치원도 사립중고교처럼 국가가 운영비와 교사 인건비를 지원하고 실질적인 공교육의 틀 안으로 편입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교과부는 우선 올해 사립유치원의 회계 운영에 대해 중점 감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기본적인 회계 개념조차 없는 사립유치원이 많다"며 "감사가 시작되면 문닫아야 할 유치원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manbok@hk.co.kr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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