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혜적인 관계 위해 협동하고 자신뿐 아닌 사회전체 발전에 최선 추구…인간 본성과 조화 이룬 정치체제 고안해야"
피터 싱어(66) 미국 프린스턴대 석좌교수는 실천윤리학 분야에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학자다. 이론적 탐구를 넘어 실행 가능한 구체적 윤리를 제시하려는 학문인 실천윤리학은 생명-의료윤리, 경제-소비윤리, 환경-보존윤리 등 세 주제로 나뉘는데, 싱어는 세 분야 전반에 걸쳐 치밀한 문제 분석과 파격적 대안을 제시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싱어는 특히 생명윤리 분야에서 '이익 평등 고려의 원칙'과 '종차별주의 반대'를 원칙으로 삼고 가히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 할 만한 전복적 논의를 전개한다. 양대 원칙 중 전자는 개개인은 불평등하나 각자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보편적 사실 앞에서는 평등하다는 것이고, 후자는 인간과 다른 종(種)이라는 이유로 동물의 이해와 권리를 부정하는 것은 인종차별과 다름없는 부당한 차별이라는 것이다. 이익 평등 고려의 원칙을 동물에게도 똑같이 적용하고 동물 학대와 육류 대량 소비를 부추기는 공장식 농장 시스템을 폐기해야 한다는 급진적 견해는 그를 단번에 유명 학자의 반열에 올린 저서 <동물해방> (1975)에서부터 일관되게 펼쳐온 주장이다.(싱어는 채식주의자다) 하지만 그는 한발 더 나아가 낙태와 안락사에 대한 찬성으로 논의를 연장시키면서 격렬한 비판을 불러 일으켰다. 동물해방>
1946년 호주 멜버른의 유대인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싱어는 멜버른대를 거쳐 옥스퍼드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77년부터 호주 모나쉬대에서 가르치다가 1999년부터 프린스턴대에 재직하고 있다. 지금까지 30여권의 저서를 집필 또는 편집했고, 국내에도 20권 이상 번역 출간됐다. 1979년 초판이 발행된 <실천윤리학> 은 이후 무수히 재판 거듭하며 실천윤리학의 기본 교재로 자리잡았다. 실천윤리학>
싱어는 또한 신문, 방송 등 대중매체를 적극 활용할 줄 아는 학자로도 꼽힌다. 전문적 용어 대신 쉬운 표현을 통해 복잡한 현안을 명쾌하게 분석해내는 그의 능력은 대중과의 소통이 필수적인 실천윤리학자로서 적합한 자질이라 하겠다. 2007년 한국철학회 초청으로 방한했을 때는 "세계적인 환경오염과 빈곤 문제를 해결하려면 오염에 대한 책임이 크고 더 많은 자원을 가진 선진국이 기부 등을 통해 해결에 나서야 한다"며 '세계화의 윤리'를 제시하기도 했다. 싱어와의 인터뷰는 이택광 경희대 교수가 이메일을 통해 진행했다.
_당신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쟁점들을 제기해왔다. 왜 이런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었는지 설명해달라.
"내 책을 읽은 많은 독자들은 내가 '동물 애호가'라서 어떻게 동물을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동물 애호가가 아니다. 나는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을 기르지 않는다. 동물에 대한 관심은 내가 철학과 학생이었을 때부터 갖게 됐다. 한 동급생이 내게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방식의 부당성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 처음에 나는 별스럽지 않게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호락호락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실제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인간이 다른 동물을 다루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고, 정말 부당하며, 지각 있는 존재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엄청나게 야기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나는 이러한 상황을 바꾸기를 원하는 것이다."
_당신은 동물과 인간의 평등을 주장하는 것인가.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편견을 가진 일반 독자들에게 이런 주장은 쉽게 설득력을 갖지 못할 것 같다.
"동물과 인간의 평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동물들의 근본적인 '권리들'에 대한 주장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인간보다 다른 동물에게 관심을 덜 기울여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어떤 종에 속하기 때문에 차별 받거나 폄훼될 수 없다는 요지이다. 인종주의나 성차별주의에 비견해서 이런 것도 '종차별주의'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우리 대부분이 다른 동물을 먹는 습관을 가졌고, 이 때문에 다른 동물을 차별할 수 있다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글쓰기와 강연, 그리고 인터뷰를 통해 이런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설득하고 있다. 채식주의자가 되게 한다거나, 건강을 위해서 다른 동물을 먹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주지시키는 것도 이런 설득의 방법 중 하나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바꾸어야 한다."
_저서 <다윈주의 좌파> (A Darwinian Left)에서 당신은 마르크스를 다윈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늘날 사회를 이해하는 데 마르크스가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는 말인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다윈주의>
"마르크스는 많은 문제에 대해 실수를 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수백만 년 동안 이루어진 진화의 과정에서 형성된 인간 본성을 가볍게 보았다. 그는 인간 본성이 사회의 경제구조를 바꾸면 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잘못된 생각이다. 물론 이 말은 마르크시즘이 오늘날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통찰을 결여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경제요소가 이념에 영향을 미친다거나 화폐의 사용이 인간관계에서 소외효과를 만들어낸다는 몇몇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철학적 체계나 정치적 프로그램으로서 마르크시즘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_이 책에서 당신은 다윈주의가 좌파적 이념을 세련되게 만들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우리는 진화한 동물이다" 같은 발언과 정치적인 문제는 어떻게 연결될 수 있나. 다윈주의적 의미에서 정치는 무엇인가.
"우리는 인간 본성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정치체제를 고안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들이 자신들과 사회 전체를 위해 최선을 추구할 수 있는 기회를 더욱 진작시키기 위해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를 활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런 과정은 건설적인 협동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진화된 인간 본성 중 하나가 바로 호혜적인 관계를 위해 기꺼이 서로 협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_일반적인 관점에서 사회는 문화적으로 구성된 것이지, 생물학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당신은 이런 통념을 비판하면서 다윈주의를 통해 발견된 자연적인 증거, 예를 들자면 위계, 남성지배, 성역할 등에 대한 이해를 사회활동에 적용하자고 주장한다. 당신은 다윈주의가 과연 어떤 정치적 기획을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다윈주의를 사용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아니다. 진화에 대한 다윈의 이론은 정치적인 기획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다윈의 이론은 순수하게 기술적(descriptive)인 것이다. 이 이론은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무엇과 닮았는지를 기술해줄 뿐이다. 이런 사실로부터 어떤 가치를 도출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먼저 무엇이 사회를 개선할 수 있을지 결정해야 한다. 내가 보기에 사람과 동물이 더 행복하고 덜 고통스럽게 살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더 나은 사회일 것이다. 이에 대한 바람직한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방법을 고안하기 위해 우리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지식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_오늘날 우리가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기후변화가 가장 시급한 현안이다. 온실가스 효과를 막지 못한다면, 수세기 뒤에 우리는 기후에 엄청난 피해를 초래할 것이다. 수십억에 달하는 사람들이 기후변화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난민이 될 수도 있다."
_당신이 제시한 다윈주의적 좌파에 경제적인 측면은 없나. 말하자면 자본주의 위기 같은 문제에 대한 대답은.
"다윈주의가 그런 문제에 대해 어떤 대답을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기처방을 다윈주의에 기대할 수 없다."
_그렇다면 개인적으로 자본주의가 더 나은 체제로 대체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그 어떤 체제도 자본주의만큼 생산적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순전한 자본주의로 인해 빚어지는 끔찍한 결과들이 감소되기를 원한다. 부를 활용함으로써 자본주의는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운 이들에게 강력한 사회안전망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 이타주의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말하자면 윤리적 삶을 강조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충분히 편안하다면, 당신의 부를 타인과 나누어서 어떤 사람들도 극도의 빈곤 속에서 살아가지 않도록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거듭 각인시켜야 한다."
_당신은 "가장 영향력 있는 생존 철학자"라는 평과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이라는 평을 동시에 듣고 있다. 이런 모순적인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정말 그렇게 영향력 있는 철학자라면, 다른 살아 있는 철학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미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내가 위험한 사람이라는 말은 부조리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합리적인 가치를 추구하도록 요청하는 철학자가 그렇게 위험한 인물이라는 말인가?"
_당신은 공리주의 철학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떤 점에서 보면 평등주의자처럼 보인다. 특히 사회 빈곤문제에 대한 태도를 보면 그렇다. 평등주의에 동의하기는 쉽지만 실현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공리주의자이다. 급진적인 평등주의자는 차치하고 평범한 평등주의자도 아니다. 나는 평등이라는 것이 저절로 얻어지는 가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100달러의 가치라는 것은 연봉 5만 달러를 버는 사람과 500달러를 버는 사람에게 결코 같을 수가 없다. 500달러를 버는 사람에게 100달러의 가치는 5만 달러를 버는 사람보다 훨씬 클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부유한 사람의 부가 상당량 가난한 사람에게 재분배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가 말해주듯이, 이타주의는 가난한 사람을 돕게 만드는 동기로 충분하지 않다. 이런 까닭에 정부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_당신의 책 다수가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나는 동물의 복리가 보편적인 윤리원칙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라고 항상 생각했다. 내 책에 대한 긍정적인 수용이 이를 잘 말해준다. 나는 내 책을 읽고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한국에서 동물을 다루는 방식이 변화하기를 바란다. 특히 고기나 달걀을 생산하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제적으로 연대해서 이 문제들을 고민해줬으면 한다."
공동기획=이택광교수ㆍ정리=이훈성기자
■ 낙태 합법화·안락사 지지…파격적인 논거 개진…"생명윤리의 전복" 논쟁 중심에
피터 싱어는 실천윤리학의 거두이자 동물해방론자다. 한편으로는 낙태 합법화, 유전병을 갖고 태어난 아이와 불치병 환자에 대한 안락사를 지지하며 뜨거운 논쟁을 불러 일으키는 이슈메이커다.
학자적 명성만큼이나 그에 대한 비판도 세계적이라는 사실은 1989년 이른바 싱어 사건(Singer Affair)에서 여실히 증명됐다. 독일 마르부르크에서 열린 '생명공학, 윤리학, 정신지체아 문제' 세미나에 참석하기로 했던 싱어가 독일 신체장애인협회의 반대 운동으로 결국 입국을 거부 당했던 것. 싱어의 책에 실린 안락사 찬성 의견이 히틀러의 인종청소만큼이나 비인간적이고 파시스트적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싱어는 1999년 프린스턴대로 옮길 때도 또 한 번 거센 반대 여론에 직면해야만 했다.
싱어가 낙태와 안락사를 지지하는 논리적 근거는 뭘까. 배국원 침례신학대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싱어는 영국 철학자 존 로크의 논의를 빌려 사람을 뜻하는 단어 'person'의 의미를 재정의하면서 합리성(rationality)과 자아의식(self-consciousness)을 그 핵심 요소로 간추린다. 즉 이성적이고 자아의식을 가진 존재가 person이라는 것. 싱어는 새롭게 정의된 단어로 파격적 주장을 개진한다. "인간 종(種)이 아니면서 person일 수 있고, 반대로 인간 종의 일원이지만 person이 아닐 수도 있다." 그에게 있어 person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어떤 '인격체'를 뜻한다.
싱어는 이어 생명의 존엄성의 적용 범주를 인간에서 인격체로 치환한다. 그의 고유 개념인 '인격적 생명의 신성함'(sanctity of personal life)이 그것. 어떤 동물은 인격체인 반면 어떤 사람은 인격체가 아닐 수도 있다는 그의 논의는 이로써 동물의 생명이 사람의 생명보다 신성할 수 있다는 가치의 전복으로 나아간다. 예컨대 싱어의 관점에서 성체 돼지는 충분한 인격체인데 반해 인간 태아는 자아의식이 없어 인격체로 볼 수 없다. 따라서 낙태는 윤리적이지만 돼지를 도살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가 자의적 안락사는 물론, 불구아 정신지체자 등에 대한 비자의적 안락사를 지지하는 것 역시 같은 논리다.
쏟아지는 비난에도 싱어는 자신의 해석이 현대인들에게 중요한 윤리적 결단의 계기를 제공한다고 확신한다. 인간의 생명은 무조건 신성하다고 가르쳤던 전통적 윤리관의 중압감에 눌려 있다 보니 뇌사 논쟁에서 보듯 생명과 죽음의 의미를 둘러싼 혼돈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동기획=이택광 경희대 교수
정리=이훈성기자 hs0213@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