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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삼성인이 자긍심을 가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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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삼성인이 자긍심을 가지려면

입력
2012.04.09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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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겨울 삼성에서 근무하는 친구 한 명이 임원이 됐다. 수 백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 20년 만에 임원이 된 친구에게 술잔을 권하며 자랑스러움과 부러움을 함께 느꼈다.

IT업계의 계절적 비수기인 1분기에 삼성전자는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아이폰 천하’를 뒤엎고 스마트폰 분야에서 1위를 재탈환한 삼성의 잠정 영업이익은 5조8,000억원으로 시장을 놀라게(어닝 서프라이즈) 하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삼성전자는 정부가 발행한 채권보다 낮은 금리로 10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본드(5년 만기) 발행에도 성공했다. 이는 글로벌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신용도가 한국 정부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고 있다는 의미다.

연말에 삼성전자 직원들이 받을 푸짐한 보너스를 미리 생각해 친구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술 한잔 사라고 전화했다. 그러나 친구 목소리는 밝지 않았다. 최근 쏟아진 삼성 관련 악재들로 속내가 복잡한 듯했다.

집안 싸움으로 번진 유산 상속 분쟁은 삼성이 가장 곤혹스러워 하는 문제인 듯하다. 고 이병철 회장의 장남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동생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7,000억원대의 소송을 제기하면서 형제들의 소송 행렬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삼성물산 감사팀이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미행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삼성으로선 대응 전략이 무색했다. 안기부를 뛰어넘는 보안 유지와 007을 능가하는 뒷조사로 명성이 난 삼성 감찰팀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나 보다. 미행 과정에서 렌터카와 대포폰이 이용됐고, 세간의 관심은 그룹 차원의 지시 여부로 옮겨갔다. 그 사이 삼성의 이미지 실추는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발표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방해 파문은 또 어떤가. 조직적 은폐 기도는 삼성을 법 위에 군림하는 기득권 집단으로 전락시켰다. 눈앞의 이익보다 상도의를 중하게 여긴 고 이병철 회장의 창업정신과 경영철학을 무색케 한 행위에 이 회장도 격노했다고 한다.

삼성의 악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눔ㆍ상생 경영이 화두인 요즘, 과거 삼성전자 협력업체 엔텍 채권단이 신라호텔 객실을 점거 농성했다. 그들이 주장하는 농성의 근거가 억지 춘향 격이라 해도 글로벌기업 삼성의 이미지에는 치명적이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관리의 삼성’이란 수식어를 무색케 한 사내 기술유출 사건이 불거졌다. 전ㆍ현직 삼성전자 연구원들이 차세대 TV제조기술을 경쟁업체에 유출했다가 적발된 것이다. 경쟁업체가 연구원들을 포섭한 정황이 드러났지만 연구원들이 회사 기밀을 외부에 유출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삼성의 인재관리와 보안체계에 구멍이 뚫렸기 때문이다. 요즘 삼성이 과거 삼성같지 않다는 평가가 쏟아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삼성이 겪고 있는 악재들은 외부 요인 보다는 곪을대로 곪은 내재적 이유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더 정확할 것이다. 철저한 실적 위주의 경영체계를 바탕으로 과욕도 문제시 되지 않는 충성 경쟁과 비이성적인 집단이기주의는 글로벌기업 삼성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경제의 발전을 위해 건전한 위기감을 고취시키면서 변화와 창조적 역할을 주문해온 이 회장이 일련의 악재들을 과연 어떻게 진단하고, 어떤 처방을 내릴 지가 관심이다.

삼성이 정도 경영을 통해 사회적 기업으로서 책임의식과 역량을 더 키워가야겠다고 마음 먹는다면 수많은 악재들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실적 지상주의를 통해 직원들을 배불리 먹이는 것 외에 그들이 사회적으로 ‘삼성인’이라는 자긍심과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란 간단치 않은 일이다.

창조경영은 다른 곳이 아닌 조직 내부의 변화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내부가 변해야 외부 인식도 달라지고 조직의 체질이 새롭게 바뀔 수 있다. 내 친구, 아니 삼성 직원들이 ‘삼성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고 이웃과 공존하며 우리 사회에 신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때는 내가 먼저 친구에게 술 한 잔을 사주고 싶다.

장학만 사회부 차장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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