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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로 마음 문 활짝, 말썽쟁이들이 달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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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로 마음 문 활짝, 말썽쟁이들이 달라졌어요

입력
2012.04.0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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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학생 즉시 출석정지, 학교생활기록부 징계 사항 기록, 피해 학생 전학 권고 폐지, 학부모 소환 의무화…. 지난해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을 계기로 당국이 내놓은 대책들이다. 하지만 반쪽짜리라는 소리를 들었다. '가해자 처벌-피해자 보호'의 이분법적 대책으로는 학교폭력 근절은 힘들다는 지적이다.

이런 현실에서 사랑으로 문제 학생들을 보듬은 학교가 있다. 서울 구로중학교는 한때 학교 폭력에 휘말렸던 학생들을 뮤지컬 동아리를 통해 바꿔놓았다. 1주일에 3일, 매일 두 시간씩 뮤지컬 연습을 하면서 학생들은 학교로 돌아왔다. 이평근 생활지도부장 교사는 "아이들을 억지로 변화시키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학교뿐 아니라 지역사회가 함께 힘을 합쳤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가해 학생 학교가 보듬어야

"누군가 진실을 알고, 누군가 고통을 알고, 다 함께 시작해, 우리 1년을 위해…."

4일 오후 4시 서울 구로동 구로중학교 국제관 2층 연습실. 3학년 여학생 10명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노래 연습을 하고 있다. 이 날은 뮤지컬 동아리 'MUSE(뮤즈)'의 연습이 있는 날이다. 겉보기에 노래도 율동도 평범해 보이지만 뮤즈가 창단되기까지 과정만큼은 특별했다.

뮤즈에 소속된 여학생들은 1년 반 전까지만 해도 이 동네에서 소문난 문제아들이었다. 수업시간에 교실을 빠져나가는 것은 일쑤고 일대에서 또래 학생들한테 돈도 빼앗았다. 인근 중학교 학생들과 싸움이 붙어 상대가 크게 다치는 일도 있었다.

구로중에서 5년째 학생생활지도를 담당하는 이평근 교사는 벌주고 징계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란 것을 잘 알았다. 징벌은 학생들을 더 삐뚤어지게 만들기 때문. 1학년 겨울방학을 앞두고 학생들이 더 큰 사고를 치지나 않을지 걱정됐던 그는 학생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다. 대부분 노래와 춤이라고 말했다. 이 교사는 "뮤지컬이 답이라고 생각해 서울시교육청 생활지도담당 장학관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고 말했다. 사연을 들은 장학관은 평소 알고 지내던 뮤지컬 연출가 성천모(41)씨를 소개시켜줬고 이렇게 해서 지난해 초 탄생한 것이 뮤즈다.

지역사회도 같이 힘을 합쳐야

"배역을 통해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고 그 과정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는 것, 바로 이것이 아이들을 성숙하게 만든 것 같아요." 2년 째 무료로 뮤지컬을 지도하는 성천모씨는 공연 3개를 한꺼번에 기획하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아이들을 꾸준히 만났다. 연극을 보여주기 위해 예술의전당이나 대학로에 학생들을 초대했고 그런 성씨를 보고 학생들은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는 뮤즈의 단골 작품인 뮤지컬 '우리는 하나'스토리도 학생들의 이야기로 만들었다. 방황하던 문제아들이 뮤지컬을 통해 세상에 대한 자신감을 얻는다는 내용이다.

학교 밖 탈선 대신 뮤지컬 연습 삼매경에 빠진 학생들은 지난해 12월, 구로구민회관 콘서트홀에서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수백 명이 관람한 공연을 마치며 학생들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그것을 지켜보던 학부모와 교사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뮤즈의 성공은 한 사람의 힘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성천모씨의 재능기부와 서울시교육청의 정책지원, 장소를 제공한 구로구민회관 콘서트홀 등 학교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뮤즈의 탄생과정을 지켜봤던 시교육청 학교혁신과 관계자는 "뮤즈와 같은 예술 중심의 교육은 학교의 노력만으로는 성공하기 힘들다"며 "지역사회의 지원 등이 이뤄질 때 가능하다"고 말했다.

일시에 큰 변화 기대는 금물

"뮤지컬 덕분에 아이들이 학교를 중도 포기하지 않고 잘 적응했다고 생각해요. 뮤지컬이 없었다면 학교를 자퇴했거나 다른 학교로 전학 갔을지 몰라요." 음악교사로서 학생들의 변화를 가까이서 지켜 본 홍진표 교사의 말이다.

지난해 1월 2일 뮤지컬 연습을 시작한 이후 학생들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학교를 이탈하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고 지난 10월 이후 금품 갈취나 학교 폭력 발생은 0건이다. 꿈을 찾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공부에 매진하는 학생도 생겼고, 뮤지컬로 연기력을 인정받아 영화(천국의 아이들)에 캐스팅된 학생도 있다. 뮤즈 회원 한성희(15ㆍ가명)양은 "1년 전까지만 해도 목표도 없고 아무 생각 없이 살았는데 뮤즈 활동을 하고 나선 뮤지컬 배우가 꿈이 됐다"며 "안양예고에 가기 위해 쉬는 시간마다 영어단어를 외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평근 부장 교사는 아이들에게 큰 변화를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 비법이라고 했다. 조바심을 낼수록 아이들에게 강요하게 되고 그러면 아이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을 수 없기 때문. 그는 "억지로 변화시키려고 했다면 아이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을까요?"라며 웃었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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