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내용을 짧게 요약한 뒤 곧바로 자신의 견해를 선명하게 드러낸 점은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이것은 논술의 형식면에서 바람직한 글쓰기 방식이다. 내용 면에서도 기사의 피상적인 독해에 의존하지 않고 나름의 관점을 통해 현상의 이면에 숨겨진 본질을 파악하려 한 것은 훌륭한 시도였다. 텍스트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검토한 것은 학생의 비판적 사고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우리에게 비교적 낯설게 느껴지는 리비아 사태를 사례로 제시하여 자신의 주장의 논거로 삼은 것은 시사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상당한 수준의 추론적 사고를 접목한 것으로, 고교 수준에서는 보기 힘든 솜씨다.
다만 세부적인 내용을 보면 아쉬운 점이 적잖이 발견된다. 먼저 이 글은 유엔의 결의안 통과에 반대하는 근거로, 국제 사회의 개입은 결국 열강의 이권 챙기기 수단이 될 뿐이라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유일한 논거는 리비아 사태 당시 서방국가들이 리비아의 석유 이권을 강탈한 적이 있어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것이다. 일견 타당해 보인다. 그런데 이 유비추론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먼저 리비아와 시리아의 유사성이 충분히 인정돼야 한다. 기실 시리아의 원유 매장량은 약 25억 배럴 정도로, 리비아(약 460억 배럴)의 5%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서구 열강이 시리아에 개입한다고 해도 경제적 이익을 얻기 어렵다는 것뿐이다.
실제로 석유가 풍부한 리비아와 달리 시리아에 자원이 별로 없다는 점은 그 동안 국제 사회가 개입을 꺼리는 중요한 배경으로 꼽혀 왔다. 유럽연합(EU)과 미국은 리비아 사태 당시에는 약 한 달 만에 군사력을 투입한 반면 시리아 사태에는 1년째 수수방관하고 있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번 결의안 통과 여부에 러시아의 경제적 이익이 걸려 있었다는 것이다. 러시아에게 시리아는 중요 무기수출국인데 결의안이 통과될 경우 무기 수출길이 막히게 된다. 또 러시아는 지금까지 시리아의 기반시설 등에 큰 투자를 해 왔다. 즉 이번 결의안이 통과되었을 경우 러시아는 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학생이 제시한 경제성 논거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게 된다. 이것은 글의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마지막 단락에서는 "중국과 러시아가 이런 점을 고려하여 반대표를 던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라는 문장으로 자신 없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글의 일관성을 스스로 훼손하고 있다. 적어도 이 문장은 삭제하는 것이 좋다. 그것도 아니면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표를 던진 이유를 서술하고 그 타당성을 분석하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결국 선입견으로 인해 결의안 자체가 옳지 않다는 전제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균형 감각이 결여된 글이 되고 만 것이다.
군사적 개입을 반대하고 민중에게 힘을 실어주어 스스로 민주화를 이루게 하자는 주장 역시 그 내용이 막연하다는 점에서 대안으로는 부족한 점이 있다. 구체적인 각론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진실된 평화"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추상적인 대안은 하나마나한 소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양하는 것이 좋다. 결과적으로 이 글은, 그럴 뜻은 조금도 없었겠지만, 시리아 정부의 유혈 진압을 정당화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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