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젊은 송시열이 충남 강경의 금강가에 지은 팔괘정 옆의 암벽에 꿈 몽자를 새긴 것도 그 때문이다. 아는 것 없고, 어리석지만 그래서 모든 가능성으로 충만한 상태,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게 "왜요?"라고 물을 수 있는 마음을 소중히 생각하자는 뜻이다. 그래서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처럼, 조선집은 왜 다 똑같이 생겼지? 라고, 생각하자. 그러고 보니 조선집은 정말 한칸, 두칸, 세칸 칸수의 차이만 있고, 지붕도 벽도, 창문도 다 똑같다. 여기 있는 집이 저기 있어도 괜찮은 것 같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서양의 집은 주로 벽돌을 쌓아서 구조를 만든다. 따라서 벽은 항상 힘을 받는 부분이 되므로 창의 모양이나 크기가 자유롭지 않다. 창을 너무 크게 내면 창위의 벽이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고, 너무 좁게 내면 튼튼하지만 빛이 잘 안 든다. 벽과 구조가 한 몸이라서 서양집 역시 입면이 단조롭다. 이 벽과 구조의 불편한 관계에서 서양집이 해방된 것이 철근콘크리트와 철골이 개발된 19세기 말이다. 프랑스 건축가 르꼬르뷔제가 주장했던 근대건축의 5원칙은, 집을 땅에서 들어 올린 필로티, 자유로운 평면, 가로로 긴 창, 자유로운 입면, 옥상정원이다. 이 다섯 가지는 모두 서양집이 철근 콘크리트와 철골을 개발하면서 가구식 구조로 옮겨가며 생긴 것이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목재를 다듬어 짜 맞춘 가구식 구조를 사용했던 조선집에서 근대건축의 5원칙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르꼬르뷔제가 주장한 근대건축의 5원칙을 조선집에 적용하면, 집을 땅에서 들어 올리는 필로티는 누마루 형식이 되고, 자유로운 평면은 한 칸을 모듈로 구성되는 평면 형식, 가로로 긴 창은 대청마루의 들어열개창, 자유로운 입면은 조선집의 벽체와 창의 구성으로, 그리고 옥상정원은 조선기와의 유기성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래서 사실 조선집이 모두 비슷해 보이는 것은 서양의 모더니즘 건축이 거기서 거기인 듯 획일적으로 보이는 이유와 같다. 모더니즘 건축이 대량생산과 획일화, 표준화를 지향하며 집들이 서로 같아졌다면, 조선집은 가구식 구조의 최적화 된 시스템 안에서 비슷해진 것이다. 결국 서구의 모더니즘 건축과 조선집은 표준화를 통해 최적화된 합리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같아진다.
그러나 분명 모더니즘 건축과 조선집은 다르다. 모더니즘 건축은 창백하고 개성이 없으며, 지리한 반복으로 사람을 시각적으로 질리게 한다. 그렇다면 같은 방법을 가진 조선집 역시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결과는 완전히 다르게 나타난다. 양쪽 다 똑같이 표준화, 최적화를 통한 합리성을 추구하는데 왜 이런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일까?
이유는, 모더니즘 건축은 표준화를 통해 집 자체가 아니라, 집을 짓는데 필요한 자재들을 대량생산하기 위한 공장 시스템을 만들지만, 조선집은 표준화를 집짓기 자체를 위한 방법적인 수단으로 쓴다는데 있다. 따라서 조선집의 표준은 대량생산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특정한 현장의 고유한 표준이 중요하게 된다. 반면에 모더니즘 건축은 공장에서 표준화 된 부재를 어느 현장에서든 무차별적으로 써야 한다. 같은 가구식 구조이지만 조선집의 경우 지역적 특성에 따라 더 세세한 표준이 조정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사소할 수도 있는 이 차이가 동일한 구조와 시스템 안에서 엄청난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흔히 인간적인 척도를 디자인에서는 금과옥조처럼 말하고 있지만 사실 조선집에서는 뒷산 소나무의 스케일이 더 중요시 되었다. 소나무를 주재료로 지어지는 조선집에서는 인근에서 큰 수고를 안하고 가져 올 수 있는 소나무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칸수의 넓이가 정해졌다. 그래서 조선집에서 한 칸의 넓이는 다 다르다. 대략 작은 경우는 1.8m×1.8m에서부터 2.4m×2.4m가 보통이고, 드물게는 3m×3m에 이르는 것도 있다. 철근콘크리트든, 목재든, 부재를 짜 맞추어 구조를 형성하는 형식은 같지만 부재의 표준이 장소의 고유성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지면서 조선집은 모더니즘 건축처럼 획일화 되지 않고, 표준화 된 시스템 속에서 다양성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잊은 우리의 오래 된 근대다.
함성호 시인·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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