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손으로 신고해 범행장소를 알렸는데 경찰이 위치추적도 못하는 게 말이 됩니까."
조현오 경찰청장과 마주앉은 수원 20대 여성 살인사건 피해자 유족들은 경찰의 늑장 대처와 안이한 수사에 분통을 터뜨렸다. 고인 A(28)씨의 부모와 형제 등 10여명은 9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사를 찾아 조 청장의 사의 표명 기자회견 직후인 오전 10시45분쯤부터 약 30분 간 조 청장과 면담했다.
면담 내내 조 청장의 표정은 무거웠다. 유족들의 항의에 그는 "죄송합니다" "송구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등 사죄의 말을 거듭했다. 조 청장은 "제가 제일 큰 책임 느끼고 있어 사퇴할 것"이라며 "(유족이 요구하는)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답했다.
피해자의 언니 B(30)씨는 "동생이 112에 신고를 한 다음날인 2일 아침 8시2분쯤 동생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더니 상대가 아무 말 없이 받고 끊더라는 지인의 연락을 받고 경찰에 알렸다"며 "경찰은 '위치추적은 119가 빠르니 동생 살리고 싶으면 119로 연락하라'고 하더라"며 분노했다. B씨는 "결국 소방서에 찾아가 동생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고 위치추적을 했더니 '제일교회 뒤 여울아파트 기지국'이 나와 우리가 도리어 경찰에 동생의 위치를 알려줬다"고 말했다.
탐문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경찰의 불성실한 태도도 이들의 가슴을 멍들게 했다. B씨는 "경찰이 피곤한 건 알겠지만 옆에 있는 나는 애가 타는데 차 안의 경찰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며 "말을 시키니 깜짝 놀라 그때서야 깨더라"고 말했다. 피해자의 이모부 박모(50)씨는 "경찰은 수사 과정이나 정보도 유족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며 "우리는 심지어 현장검증도 언론보도를 보고서야 알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족들은 조 청장에게 ▦유족 입회 하의 감찰 조사 ▦사건 책임자 10여명 명단 공개 ▦112신고 녹취음성 공개 등을 요구했다. 조 청장은 "경찰이 이제까지 입만 열면 거짓말하고 축소, 은폐하려 했던 것 때문에 제가 그만두는 상황까지 왔는데 이 마당에 뭘 더 숨기고 속이겠느냐"며 "경중에 따라 형사입건, 파면, 해임, 정직 등의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고인의 부모는 차마 말문도 열지 못하고 침통한 표정으로 조 청장의 답변을 들었다. 자리를 일어서면서도 손수건으로 거듭 눈물만 찍어내는 그들의 모습에서 까맣게 탄 속내가 내비쳤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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