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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기자의 Cine Mania] 영화와 소신 사이 일체감을 때로는 보고싶다

입력
2012.04.09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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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 만조(森羅萬象)라는 일본 영화배우가 있다. '하나-비'(1997) 등에 출연한 이 무명배우의 한자 이름(물론 가명이다)은 우주의 온갖 사물과 현상을 의미한다. 어떤 역할을 맡든 천변만화하는 표정과 세밀한 감정을 그려내겠다는 배우로서의 강한 바람이 담긴 이름으로 보인다.

배우들은 언제나 변신을 꿈꾼다. 스크린 안과 밖의 모습도 다르게 비치길 은근히 바란다. 평소 유약하게만 보이는 배우가 카메라 앞에서 악마적인 본성을 드러내면 관객이 받을 충격의 강도가 더 클 테니까. 남들에겐 손가락질이 따라다닐 표리부동이 배우에겐 일종의 미덕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정반대 경우도 있다. 터키계 독일 여배우 시벨 케킬리는 스크린과 현실의 모습이 거의 그대로 포개지는 인물이다. 2004년 데뷔작 '미치고 싶을 때'가 대상인 황금곰상을 받으며 베를린국제영화제의 혜성이 되었던 그녀는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도색영화에 출연한 과거가 언론에 폭로되면서 부모와 의절해야 했다. 가족들이 치욕을 견디다 못해 그녀에게 명예살인을 행할지 모른다는 보도까지 외국언론에서 흘러나왔다.

지난달 개봉한 케킬리의 최근작 '그녀가 떠날 때'는 폭력을 견디다 못해 가정을 뛰쳐나온 한 여인의 고통을 세묘한다. 명예살인까지 불사하는 독일 내 터키계의 인습은 케킬리의 사생활과 겹치며 사실감을 더한다. 케킬리는 터키계 가정폭력에 맞서는 시민단체를 후원하고 있기도 하다. 스크린 안팎이 다르지 않은, 보기 드문 배우인 셈이다.

조지 클루니도 케킬리에 가까운 배우다. 아프리카 수단 정부의 민간인 학살을 비판하며 행동하는 배우로서의 이미지가 강한 그는 영화를 매개로 정치적 발언을 곧잘 해내고 있다. 그는 미국의 중동정책을 비판한 '시리아나'(2005)를 제작하고 출연까지 해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직접 메가폰을 든 '굿나잇 앤 굿럭'(2005)으로 건강한 언론의 힘을 강조하기도 했다.

클루니는 연출과 출연을 겸한 신작 '킹메이커'(19일 개봉)를 통해선 권모술수와 부당한 거래가 횡행하는 미국 정치판을 해부한다. 민주당 지지자인 그는 민주당 대선 후보 모리스로 출연해 복마전 같은 대선 과정을 통박하기도 한다. 같은 정치적 진영을 향해서도 비판의 칼을 들이대는 것이다. 원칙을 지닌 배우로서의 그의 이미지 때문에 단순해 보일 수도 있는 영화는 설득력을 얻는다.

연기 변신에 능한 배우도 좋지만, 현실에서의 정치 사회적 입장이 영화에도 투영되는 배우도 필요하지 않을까. 국내에선 너무나 찾기 힘든 그런 배우가 많아졌으면. '킹메이커'의 개봉을 앞두고 드는 단상이자 작은 바람이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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