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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을 데 없는데 걷기 명소… 황당한 '의왕 누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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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을 데 없는데 걷기 명소… 황당한 '의왕 누리길'

입력
2012.04.09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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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낮 12시 경기 의왕시 월암동 의왕시자연학습공원 옆 왕복 2차로 도로. 유모차를 밀며 산책을 나온 한 가족이 도로변에 바짝 붙어서 걷고 있었다. 차들이 스칠 듯 옆으로 계속 달리자 이들의 몸은 더욱 밀착됐다. 일부 차량은 위태롭게 중앙선을 반쯤 침범하며 피해갔다.

“빠아~앙!” 앞서 가던 초등학생들이 도로로 들어서자 차량들이 경적을 울려댔다. 이곳은 의왕시가 83만6,000㎡ 면적의 왕송저수지 주변에 조성한 ‘의왕누리길’ 중 한 구간이지만 차로만 있을 보행자가 다닐 길은 없었다.

철도박물관 앞 누리길에는 그나마 걸을 공간이 있었다. 도로와 나란하고 높이는 1m 정도 낮은 곳에 있어 이 길을 걷는 이들 머리 옆으로도 차들은 쌩쌩 지나갔다. 넓이는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정도이고, 좁은 곳은 폭이 약 50㎝에 불과했다. 바로 옆은 저수지라 한 발만 헛디디면 물 속으로 빠지게 된다. 서울에서 온 이모(34ㆍ여)씨는 “호수가 아름답다고 해 일부러 찾아왔는데 도대체 사람이 다닐 길이 없어 큰 사고가 날 것 같다”며 “안내판만 여기저기 꽂아놓고 걷기 명소라고 하니까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넓은 호수와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수도권의 숨은 명소 왕송저수지. 하지만 저수지 주변 누리길에 대해서는 ‘위험천만한 걷기 명소’라는 불만과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의왕시는 지난해 4월 말부터 약 두 달간 5억4,900만원을 들여 누리길을 조성했다. 종합안내판 11개와 방향안내판 55개, 거리안내판 84개 등을 세웠고 정자와 쉼터도 1개씩 조성했지만 정작 걸을 만한 길은 별로 없다. 특히 호수를 조망하기 좋아 방문객이 가장 몰리는 자연학습공원부터 철도박물관 앞까지 약 400m 구간은 인도가 없거나 한 명이 겨우 다니는 소로(小路)뿐이다. 철도박물관과 초평교 사이 벚꽃길에도 아예 사람이 다닐 길은 없다.

지금도 보행자 안전이 위협받고 있지만 문제는 앞으로가 문제다.

왕송저수지 일대는 벚꽃으로 유명해 매년 봄 상춘객이 몰려들고 5월에는 어린이 축제가 열린다. 반면, 전철역이나 버스정류장과 멀어 도로 양 ??향으로 매년 불법주차가 매년 극성을 부린다. 호수 주변에 구획선이 그려진 주차공간에는 승용차 10여 대만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달 24일 지하 1층에 지상 3층, 연면적 1,980㎡ 규모의 조류생태과학관까지 문을 열 예정이다. 시는 연간 20만명이 왕송저수지 주변을 찾을 것으로 보지만 과학관에 딸린 주차공간도 30대에 불과하다.

시는 저수지 주변 도로에 ‘양방향 주차 금지’ 현수막들을 내걸고, 주차위반단속 차량을 투입해 단속을 벌이는 중이다. 70여 대를 수용할 수 있는 임시주차장도 만들었지만 인도 확충까지는 손을 못 대고 있다. 일대가 그린벨트인 점도 있지만 저수지 일대에 시가 역점사업으로 추진하는 레일바이크의 영향도 크다. 레일바이크는 환경단체의 강한 반발과 수원시와의 저수지 경계 조정 실패 등으로 속도를 내지 못하는 상태다. 시 관계자는 “도로 폭이 좁아 호수 쪽으로 보행데크 등을 만들 수 있지만 지금 했다가는 (레일바이크 설치 시) 다시 뜯어내는 결과가 생긴다”며 “인도 폭이 좁은 구간은 개선방안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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