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키맨'으로 불리는 진경락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이 검찰의 공개 소환에 불응하는 이유는 뭘까. 한때 사건의 '윗선' 대신 책임을 진 데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며 강하게 불만을 표출했던 그가 정작 재수사라는 멍석이 깔렸는데 도리어 입을 닫은 배경을 두고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당시 공직윤리지원관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진 전 과장은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 다음의 2인자였지만, 실제로는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으로부터 지시를 받아 청와대 하명사건을 지원관실 각 팀에 배당하고 사찰 내용을 간추려 직접 보고서를 전달한 비선 보고 라인의 핵심 인물이었다. 이런 그가 입을 연다면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의 잇단 폭로와도 비교할 수 없는, 위력적인 내용이 나올 것이란 게 검찰의 기대였다.
하지만 진 전 과장은 지난 6일 검찰의 소환에 불응함으로써 수사에 협조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는 증거인멸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실형 선고를 받은 뒤 항소심에서 폭로를 준비했던 그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장 전 주무관이 공개한 지난해 3월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과의 대화 녹음에는 "진 과장이 청와대 수석들을 법정에 세우겠다고 난리를 쳤다"는 내용이 나온다. 진 전 과장은 그때 "청와대, 이영호 전 비서관, 한나라당까지 다 불살라 버리겠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는 게 주위의 증언이다. 윗선 대신 죄를 뒤집어썼는데 아무도 자신을 보살펴주지 않는 데 대한 불만이 극에 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진 전 과장이 심경 변화를 일으킨 데 대해 여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추가 기소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가 1차 수사에서는 증거인멸 혐의로만 기소된 만큼, 2차 수사에서 불법사찰에 깊숙이 개입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직권남용 등 혐의로 추가 기소될 수 있어 진상을 고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출소한 이후 자발적으로 마음을 고쳐먹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집행유예로 석방은 됐어도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면 공무원 신분을 잃게 되는 만큼 이런 분석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진 전 과장이 입막음조로 어떤 대가를 약속받은 것 아니냐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실제로 석연찮은 부분이 있다. 항소심 선고 직후인 지난해 6월 진 전 과장을 만난 한 인사는 "그가 비닐도 뜯지 않은 새 중형차를 몰고 있었다"며 "수감 생활을 하던 사람이 석방 직후 새 차를 몰고 다닌다는 게 조금 의아했다"고 말했다.
실무자급인 장 전 주무관이 입막음 대가로 일자리와 현금을 건네받은 사실만 봐도 이 사건의 윗선이 진 전 과장의 입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였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두 사람에 대한 대응의 차이는 장 전 주무관의 변호는 개인 변호사가 맡은 반면, 진 전 과장의 변호는 이명박 정권 출범 때부터 친정권 로펌으로 분류된 법무법인 바른이 전담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만약 진 전 과장이 입막음 대가를 받고 불법사찰의 윗선과 한 배를 탄 운명이 됐다면, 그의 입을 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검찰은 보고 있다. 진 전 과장이 현재 참고인 신분이라 강제구인할 방법이 없다는 점도 검찰로서는 고민이다.
권지윤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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