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뒤 치러지는 총선에서도 교수 후보들의 모습이 여럿 보인다. 선거때면 으레 그랬듯이 이번에도'폴리페서'들이 넘쳐난다. 공천 받은 교수만 18명이고 비례대표까지 합치면 30명에 육박한다. 수업 부담이 적은 겸임교수나 초빙교수, 특임교수 같은 별별 교수를 포함하면 그 숫자는 더 늘어난다.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은 공천 심사 기구를 따로 만들어 엄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후보들을 뽑았고, 교수 역시 예외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이걸 액면 그대로 믿는 국민들은 드물 것이다. 일부 예외가 있긴 하나 대부분 정당을 대표하는 인물과 얽혀있다고 보는게 옳다. 정치속으로 들어간 교수 중 현실성 있는 공약과 기성 정치인 못지 않은 연설로 표심을 사로 잡는 장면도 간헐적으로 포착되지만 대부분은 아마추어 수준이다. 준비 안 된 상태에서 덜렁 공천을 받은 정치 신인으로선 당연할지 모르겠다. 기껏해야 유명 정치인들에게 정책 조언을 하거나 공약을 만들 때 간여한게 전부인 교수가 유권자를 감동시키기란 참으로 생소하고 힘들 것이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금배지가 지상의 과제인 이상, 거대 정당들이 뒤를 받치고 있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 후보를 무차별 저격하는 수 밖에. 이런 폴리페서에게 정의, 윤리 따위의 교수가 갖춰야 할 고상한 가치들은 사치다.
교수는 정치를 해선 안 된다는 법은 없다. 후진성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 정치의 냉정한 현실을 직시할 때 각 분야 전문가인 교수들의 참여는 긍정적인 면이 분명히 있다. 18년간 미국 코넬대 총장을 지낸 로드가 "교수는 지식의 발전과 확산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도, 교수의 현실 참여를 독려한 것이라 여겨진다.
현행 법령이 공무원의 정당 가입은 금지하고 있지만 유독 국립대 교수는예외를 적용하는 것은 폴리페서의 책임을 강조한 것이다. 정치에 대한 조언자로서 교수를 인정하되, 동시에 "함부로 정치판을 기웃거리지 말라"는 경고다.
이런 법령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폴리페서' 라는 수식어가 이름 앞에 붙는 교수들은 더 이상 교수로 분류돼선 안 된다는 생각이다. 정치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교수는 정치인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다. 연구와 강의로 압축되는 교수 본연의 업무에선 손을 떼야 하는 이유다. 국회의원 뱃지를 달거나 장ㆍ차관 같은 정부 고위직에 임명되면 사표를 던지는 게 마땅하다. 교수 스스로의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양심적인 교수가 있는지 찾아봤지만 부질없었다. 사표는커녕 심지어 10년 가까이 휴직 중인 의원도 목도됐다. 이번 총선에 나오는 교수 중에 휴직계 조차 안 낸 경우가 태반이니, 무얼 더 기대하겠는가.
'정치인' 폴리페서가 활개치는 까닭은 제도의 잘못이 다고 본다. 폐해를 인지한 정치권이 18대 국회에서 '폴리페서 방지법'을 발의했지만 수면(睡眠)이 길어지고 있다. 국공립, 사립 가리지 않고 교수가 국회의원 되면 사표 내거나 선거기간 휴직을 의무화한 법령은 방치돼 있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피해를 보고, 땜질 강의가 속출하는 부작용은 기성 정치인 안중에 없다. 이래놓고 국회가 반값등록금 운운하는 것은 난센스다. 개그콘서트 '사마귀 유치원' 소재가 돼도 할말이 없을 것이다.
대학의 책임도 크다. 행여 정치권에 진입하는 폴리페서들이 학교 운영에 플러스가 될거라 생각했다면 순진하다. 폴리페서가 대학 발전에 기여했다는 말은 들어본적이 없다. 자신의 이익과 명예를 좇는 이들이 학교에 무슨 도움을 주겠는가.
해법은 두 가지다. 19대 새 국회가 폴리페서법을 빨리 처리해야 한다. 대학들도 선출직이든 임명직이든 교수가 정치권이나 공직에 나서면 나중에 복직시키더라도 사표를 받는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새누리당 비례대표 상위순번을 받은 이만우 교수를 향한 고려대생들의 차가운 시선은 대형 폭탄이 될 수도 있다.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의원과 교수, 둘 중 어떤 걸 택할 건가요."모든 폴리페서와 정치권, 대학에 던지는 경고의 메시지다.
김진각 여론독자부장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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