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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의 애고에코] 학문 융합의 첫번째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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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의 애고에코] 학문 융합의 첫번째 조건

입력
2012.04.08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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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우리나라 학계나 산업계에서 인기 있는 단어를 들라 하면 '학문의 융합'이라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통섭', '학제간 연구' 등 다른 용어로도 표현되지만 이 개념의 핵심은 서로 다른 학문 분야의 통합을 통해 기존 학문 분과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고, 창의적인 생각도 짜내 보자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성공 사례가 이런 움직임에 불을 댕겼다고도 볼 수 있다.

언뜻 쉬워 보이는 이야기지만, 실현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하면 난제도 이런 난제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학계나 산업체에서 '융합'을 해보겠다며 벌이는 일이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하나는 단순히 2, 3개의 이종기술을 '짬뽕' 해놓은 것을 융합이라 부르는 우를 범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세포의 화학적 특성을 연구하는 생화학자가 의과대학에서 사람의 질병을 다루는 연구자와 함께 연구하면서 이를 '학문의 융합'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이는 잘못이다. 연구하는 대상이 바뀌었을 뿐 연구의 방법론이 바뀌거나 두 학문이 만나서 새로운 질의 학문이 등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극단은 전혀 관련 없는 것들을 만나게 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것이 갑자기 나오기를 바라는 경향이다. 창의성을 기른다며 바쁜 기술자들을 일과시간에 모아놓고 의무적으로 고전 음악을 듣게 한다거나, 수학교육은 소홀히 한 채 공대생들에게 인문학 고전들을 들이대는 것이 그것이다.

학문의 융합이 성공하려면 융합하는 학문들 사이의 거리가 적정해야 하고 연구자간에 다른 분야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선행되어야 한다. 이런 적절한 거리의 융합으로 성공한 예를 산림 생태계 연구에서 찾을 수 있다.

초기 생태계 연구는 대부분 호수 연구에 집중되었다. 경계가 뚜렷해 시스템 연구가 쉬웠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산림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생태계'라는 개념을 자신의 시스템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를 몰랐다. 미국 동부 허버드 브룩 연습림에서 산림을 연구하던 보어만 교수도 같은 문제로 고민했다. 생태계라는 개념이 당시 자연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화두였으나 끝도 없이 펼쳐진 숲에서 이를 어떻게 적용할지는 큰 고민 거리였다. 시스템을 연구하려면 경계도 있어야 하고, 이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정의해야 했던 탓이다. 하지만 그는 위스콘신대에서 호수생태학을 연구해 막 학위를 받은 라이켄스 박사를 자신의 연구원으로 초빙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두 사람은 작은 '유역 (Watershed)', 즉 비가 왔을 때 물이 한곳으로 모이는 땅의 덩어리를 육상생태계 연구의 단위로 제안했다. 산의 문제를 호수 연구 방법론으로 해결한 것이다. 이를 통해 산림 생태계의 연구를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되었고, 이후 생태계 연구는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지금도 강과 호수의 물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유역단위의 관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유효한 것은 이들의 선구적인 융합연구 덕분이다.

기실 세계적인 학자라고 불리는 사람 중에는 혼자서도 이종의 학문들을 잘 연결한 이들이 많다. 지질학과 생물학을 연결한 찰스 다윈이나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였던 뉴턴의 예는 잘 알려진 예다. '생태계'라는 용어를 처음 세상에 알린 생태학자 아서 탠슬리경도 그가 쓴 책 중 가장 많이 팔린 것은 심리학 분야 서적이었다. 현대 석학 중에도 비슷한 예는 많다. <총ㆍ균ㆍ쇠> 라는 책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제어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지리학과 소속이나 원래 전공 분야는 생리학이다. 노암 촘스키 교수도 심리학과 언어학이라는 서로 다른 학문 분야에서 모두 뛰어난 업적을 남기고 있는 학자이다.

이런 소수의 천재들의 융합 성공이 대다수의 학계와 산업계에서도 일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융합', '통합','통섭','수렴'과 같은 멋진 표현 찾는 데 고심할 것이 아니라, 대상들의 적절한 거리 찾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강호정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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