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줄에 서있는 내 친구들 선배들 후배들에게 고합니다. 제발 모레 꼭 투표장 갑시다. "80년대의 기억" 운운 객쩍은 소리 꺼내려는 것 아닙니다. 올해에 치러질 두 번의 선거가 지난 몇 십 년간 한국 사회를 짓눌러온 신자유주의를 털어내는 변곡점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는 그 잘난 '486'으로서가 아니라 생활인 '40대'로서 맡아야 할 책임과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꼭 25년 전이네요. 1987년 무렵 치러진 대선과 총선에서 우리는 그 전 25년 동안 지속되었던 군부 독재를 일단락 짓고 새로운 시대로 들어섰습니다. 이 흐름 속에서 우리 40대는 분명 수혜자에 가까웠고, 잘 나가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하필 머릿수까지 많은 우리 세대는 '젊은 피'네 벤처 열풍이네 하는 시류를 타고 순식간에 사회 곳곳에서 '주류'로 또아리를 틀었고 별로 향기롭지 못한 사교육 바람, 부동산 바람 심지어 성기 확대 수술 바람까지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가 또한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고민과 걱정을 한국 사회에 심어놓은 시대라는 것도 사실입니다. 돈 놓고 돈 먹는 무한 경쟁이 '지구화'라는 이름 아래에 시작되었고, 재산이든 스펙이든 '빽줄'이든 챙겨놓지 못한 모든 이들은 '경쟁력 부재'라는 이름 하나로 온갖 험한 꼴을 보는 천태만상이 만연하였습니다.
그 와중에서 굳이 세대로 따지자면, 우리보다 젊은 친구들은 숱한 고초를 겪어야 했습니다. 지금 30대인 후배들 친구들과 한번 이야기해보세요. 졸업하고 군대 다녀와서 취직하려 했다가 IMF 맞고서 어쩔 수 없이 대학원 갔다가, 그러다가 직장도 결혼도 출산도 모호하게 되어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인데 아직도 엉거주춤한 자세로 자기 인생을 바라보는 친구들, 너무나 많습니다. 더 아래인 20대 친구들도 눈물이 납니다. 작년에 만났던 28세 친구의 푸념이 떠오르네요. 자기는 다섯 살부터 돈 갖다가 바치고 명령에 따르는 존재였답니다. 유치원에, 학원에, 대학에, 각종 자격증 학원에. 하지만 그렇게 해서 20여 년 간 엄청난 돈과 땀과 눈물을 바치고서 가까스로 나온 세상이 자기에게 열여 준 미래는 비정규직...
그런데 화무십일홍이라죠. 25년이 지난 지금 또 다시 변화의 바람이 부는군요.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나 이제 1%와 99%가 나누어지기만 하는 세상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옵니다. 각종 '정치 마케팅'과 온갖 선전 기법의 발달로 이번 선거의 쟁점이 무엇인지 아주 모호해진 것 같은 면이 있습니다만, 저는 이번 선거에 즈음하여 우리 사회를 바라보면서 모든 이들이 가장 마음 속 깊이 묻고 있는 질문은 '정말 이렇게 계속 갈 수 있을 것인가?'라고 생각합니다. 말할 것도 없이 신자유주의의 이름 아래에 한없이 벌어져버린 사회 경제적인 불평등을 말합니다. 25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올해 우리 사회도 다시 한 번 중대한 변곡점에 서게 된 것입니다. 25년 전의 변곡점이 '민주주의 확립'이라는 다소 고상한 것이었다면 이번의 변곡점은 '함께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25년 전 풋풋한 20대였던 우리가 그래서 그 '고상한' 문제의 전면에 내몰리게 되었듯이, 세상 물도 웬만큼 잘 먹고 배도 웬만큼 나온 우리 40대이기에 또 한 번 이 함께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책임과 역할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도 이제 나이가 나이니만큼 살아온 세월과 남아있는 세월을 생각하며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지난 4년간의 한국이 정말 우리의 미래의 모습인지. 그리고 우리가 정말 이런 사회에서 우리 노년을 보내고 싶은지. 그 대답을 수요일 날 우리 사회의 다른 이들에게 고합시다.
수요일 오전에 비가 올거라는군요. 4년 전 총선 때도 비가 왔고 투표율이 최악이었습니다. 투표할 흥이 안나 방바닥에서 뒹굴거리며 '개기던' 우리들 40대의 책임이 가장 컸다고 하지요. 이번 수요일에는 우산을 쓰고 아침 봄비에 젖는 흙 냄새를 맡으며 나가봅시다. 새로운 무언가가 시작되는 느낌은 항상 좋다고 합니다. 특히 40대의 육체 및 정신 건강에는요.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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