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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성석제 9년만에 새 장편 '위풍당당'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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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성석제 9년만에 새 장편 '위풍당당' 펴내

입력
2012.04.08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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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뭐냐요, 아자씨?"(76쪽)

소설가 성석제(52)씨의 새 장편 <위풍당당> (문학동네 발행)의 고갱이는 (작품 무대인) 강마을 주민 여산이 영필에게 던지는 질문에 압축돼 있다. 가족 해체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가족의 본질적 의미는 무엇인가, 이 묵직하고도 시의적절한 물음이 이 소설의 핵심 주제다. 성씨의 팬이라면 여산의 희한한 말본새가 애타게 기다려오던 것의 표식처럼 여겨질 테다. 어딘지 어수룩한 인물들을 거느리고 해학과 입담의 폭소탄을 펑펑 터뜨리던 '성석제 표 소설'이 돌아온 것이다.

이야기의 큰 줄기는 강마을 주민 여섯 명과 '전국구' 조직폭력배의 대결. 읍내에 갔다가 귀가하는 스무 살 새미를 노리던 조폭 행동대장 세동이 새미의 남동생 준호에게 호되게 당하면서 사달이 시작된다. 조폭 두목 정묵은 조직원 합숙훈련소를 은밀히 장만해 휴대폰도 안 터지는 이 궁벽한 시골에 들어왔던 터. 정묵은 마을 접수를 선언하고 부하들을 투입한다. 노인인 영필과 소희, 중년의 여산과 이령, 새미 남매로 구성된 주민들은 물러서지 않는다. 남매만 내보내면 마을의 평화를 되찾을 수 있다는 영필의 항변을 여산은 "가족이 뭐냐요"라는 말로 일축한다. 회칼로 무장한 조폭과, 똥거름 말벌 등 자연산 무기를 동원한 주민들에겐 자존심과 생존을 건 승부이건만, 독자는 그들이 일합을 겨룰 때마다 터지는 웃음을 주체할 수 없다.

아무 인연 없던 이들이 이 외딴 마을에 모여 살게 된 사연도 차츰 밝혀진다. 남편이 죽은 뒤 남편의 전처 소생과 시댁으로부터 철저하게 버림 받은 소희, 부잣집 적장자로 태어났지만 유산을 노린 친척들의 농간에 말려 "이십대 중반부터 퇴역 상이군인의 행색으로" 살아온 영필, 전 남편의 광기 어린 폭력에 딸을 잃고 강에 투신했다가 여산에게 구조된 이령. 맨 나중에 마을에 흘러든 남매의 처지도 이들보다 나을 게 없다. 새미를 어릴 적부터 겁탈해온 계부를 함께 응징하고 가출했던 것.

가족에게 씻기 힘든 상처를 입었던 이들이 다시금 '가족'과 '식구'의 이름 아래 모여든다. 비록 (사전적 의미에서) 가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인 혈연은 없지만, 운명을 함께하며 서로를 보살피는 이들이 가족의 이상적 모델에 가까운 공동체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성씨는 "가정에서 말 한 마디 안 해도 서운할 것도 불편할 것도 없는 관계를 맺다가도, 바깥에서는 한사코 가족애를 느끼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이라고 말한다. 조폭이라고 다를 바 없다. 어린 후배들에게 가혹한 '동생'에게 정묵은 "너 식구가 뭔지 아나?"라고 운을 떼며 따끔하게 훈계한다. "사람이라는 거는 부모와 선생이 귀찮다, 싫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없으면 못 사는 거야."(81쪽)

양 진영의 결투는 여산과 정묵, 두 가장(家長)의 맞짱 대결로 수렴된다. 이 대단원에 느닷없이 마을을 향해 밀고 들어오는 불도저, 포클레인 등의 중장비는 주민들의 또 다른 위기와 대결을 예고한다. "독선적 사고, 이기성과 탐욕에서 출발해 자연을 파괴하는 모든 개발에 반대"하는 작가의 문제 의식이 반영돼 있음은 물론이다.

장편으로는 <인간의 힘> (2003) 이후 9년 만이다. 물론 성씨는 그 사이에도 단편집 <참말로 좋은 날> (2006), <지금 행복해> (2008)를 내는 등 꾸준히 창작 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이번 소설은 오랜만의 장편 이상의 반가움을 준다. 한동안 실력 발휘를 자제하던 '이야기 고수'의 본격 귀환을 알리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시대의 어두운 측면, 특히 가족 비극에 눈이 많이 가더라고요. 아버지와 아들이 싸우다가 불을 낸다거나, 가족들이 살의를 품고 치고 받는다든가. 내 몸을 관통하는 그런 시대를 소설로 번역하다 보니 작품 색채가 암울해지고 스스로도 힘들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니까 예전처럼 몸이 가벼워지고 호흡도 빨라지더라고요."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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