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경 전북대 반도체과학기술학과 교수가 실천하는 과학자라고 말한 이종람 포스텍 신소재공학부 교수가 이번엔 '늦깎이 과학자'라며 루크 리(한국명 이평세) 미국 버클리대 생명공학과 교수를 소개한다.
가수 김태원, 윤종신 등에서도 보듯 '늦둥이' 전성시대다. 루크 리(53) 미국 버클리대 생명공학과 교수도 이 축에 속한다. 10년 넘게 다니던 회사를 박차고 나와 1996년 미국 버클리대 대학원에 문을 두드렸다. 당시 그의 나이 36세였다.
리 교수는 생활비를 줄이려고 대학 기숙사로 집을 옮겼는데, 기숙사가 깨끗하지 않다며 투덜대던 딸의 모습이 미안함과 함께 아직도 마음 속에 남아있다고 했다. 당장의 수입원이 없어 생활하는 데도 막막했다. 사실 그 막막함은 이민 초기 그가 이미 경험한 것들이다.
리 교수는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미국으로 이민 왔다. 집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용돈이라도 벌어볼 심산으로 레스토랑에서 일했다. 손님이 식사를 마치면 접시를 주방으로 날랐다. 주방 청소도 하고, 접시도 닦았다. 영어가 안 돼 웨이터는 하지 못했다. 학교에서 숙제를 내줘도 숙제가 뭔지 몰라 못해가기 일쑤였다.
그랬던 그가 39세에 미국 버클리대 생명공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늦깎이였지만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5년 만에 종신직을 받았다. 2010년엔 호암상도 수상했다. 지금이야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다시 공부를 하겠다고 나설 때 고민 많이 했다고 했다. 그래도 "내가 원하는 연구를 자유롭게 하면서 회사의 이익보다 사회에 도움 되는 연구 결과를 내놓고 싶었다"는 그의 바람을 하나 둘 이뤄가고 있다.
최근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에서 리 교수의 연구에 15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에이즈 바이러스(HIV), 결핵, 암 등에 걸렸는지 초기에 알 수 있는 바이오칩 연구를 벌써 10년째 하고 있는데, 그 실현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생활에 있어 그는 '괴짜'에 가깝다. 시간을 15분 단위로 쪼개 관리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언제 죽을지 모르니 주어진 시간에 최대한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하루 수면 시간은 4시간. 최근엔 6시간을 자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그렇게 아낀 시간은 논문 읽고, 연구실 학생들과 토의를 하고, 학교 일을 보는 데 쓴다. 20년 넘게 타고 다닌 도요타의 코롤라도 앞으로 몇 년은 더 타고 다닐 생각이다.
2002년 안식년을 보내러 간 버클리대에서 리 교수를 처음 만났다. 30대 중반에 가지 않은 길을 택한 그를 보면서 '나이 많아서 안 된다'는 말은 핑계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나뿐 아니라 오늘날 안정적인 삶을 좇는 젊은 청년들에게도 리 교수는 좋은 본보기가 아닐까.
정리=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