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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의 만남] 보건의 날 대통령 표창받은 정철우 안마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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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의 만남] 보건의 날 대통령 표창받은 정철우 안마원 원장

입력
2012.04.0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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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한강안마원 정철우(64 안마사) 원장은 고아다. 장님이다. 무당한테 맡겨져 점술을 배우다가 열여섯 살에야 맹아학교라는 데가 공짜로 공부를 시켜준다는 걸 알게 됐지만 식비를 내는 게 힘들어 서울에서 대전으로 청주로 옮겨가며 어렵사리 학업을 마쳤다.

스물 다섯에 안마피리를 불면서 손님을 찾던 그는 이제 대전의 번듯한 빌딩 주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개발한 생리자극치료법(그는 안마사가 치료라는 말을 쓰면 절대 안된다며 극구 말렸지만 아픈 것을 낫게 하는 것은 시속에서 치료라고 부른다. 따라서 이것은 기자의 명명이다.)이 전국에 입소문이 나면서 그는 하루에도 70명이 넘는 '환자'를 본다. 원장 체력에 따라 하루 전날 예약해서 겨우 끊은 사람 수가 그 정도란다. 오전 10시부터 늦으면 오후 6시까지 점심도 거르면서 종일 본다지만 손님들이 내는 비용을 생각하면 마냥 칭찬해주기는 껄끄럽다. 그러나 정작 찾아오는 이들은 "병원 가면 CT니 MRI니 찍느라 돈 들기는 마찬가지이고 독한 약 먹으면 속 버리는데 여기서 시술 받으면 자연치료고 한 달 정도는 건강하다"며 고비용을 따지는 기자를 나무라니 그 부분은 전문가의 영역에 맡기자. 다만 확실한 것은 그가 역경을 이겨낸 사람이라는 점. 또한 그는 7일 보건의 날에 대통령표창을 받은 것이 안마사도 보건인으로 정부가 인정한 것이라며 안마사 후배들이 당당한 대접을 받는 데 이 수상이 기여하길 바란다며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로 했다.

_안마원은 안마시술소랑 다른 건가요?

"의사 한의사가 여는 것은 의원이고 안마사가 여는 것은 안마원이라고 해요. 의사 한의사가 하는 것은 치료고 안마사가 하는 것은 시술이라고 부릅니다. 안마사는 마사지 지압 전기기구에 의한 시술, 기타 자극요법을 쓸 수 있어요. 이 중에 안마만을 전문으로 하는 곳을 안마시술소라고 하는데 요즘은 뜻이 변질되어 문제지요."

_안마원이라 안마를 할 줄 알았는데 좀 다르네요.

"저도 39년전에 안마원을 처음 열었을 때는 안마나 침을 주로 했어요. 안마사도 3호침 이하의 작은 침은 쓸 수 있거든요. 그러다가 25년전부터 생리적 반응점을 알게 되어서 그때부터는 이 시술만 하고 있어요. (사람을 눕혀놓고 아주 작은 침으로 온몸의 수 백 군데를 톡톡 건드리는 방식이다.) 인체에 있는, 물리적 자극에 예민한 지점을 생리적 반응점이라고 불러요. 간으로 연락되는 생리적 반응점, 쓸개로 가는, 코로 가는 생리적 반응점. 요 반응점에다가 적당히 자극을 주면 혈액순환이 잘되고요. 혈액순환이 잘되니까 조직내 영양공급, 산소공급이 잘되고요. 또 림프액 순환이 잘되어서 노폐물 퇴적물 이게 소변 대변으로 잘 빠져나가고 그러면 우리 몸에서 각종 호르몬이 분비가 잘 돼요. 그러면 건강이 좋아지는 겁니다."

_어떻게 그런 걸 알게 됐지요?

"안마를 하면서 십여년 동안 사람들의 몸을 만지고 쓰다듬다보니까 어느 날부터 피의 흐름, 림프의 흐름이 손으로 느껴져요. 텔레비전에 얼굴을 들이대고 있으면 얼굴에 거품 묻은 것 같은 느낌이 들지요? 그와 비슷한 느낌인데 어느 부분에 그게 약한 게 있어요. 거기를 자극을 주는 거에요. 어느 부분에 이상점을 느꼈는데 그 분한테 물어보면 간이 나쁘다고 그래요. 또 어떤 사람은 위궤양이라 그러면 아, 여기구나 그래요. 그렇게 해서 하나씩 알아가게 된 거지요."

_경혈 같은 건가요?

"그거하고는 달라요. 경혈은 침을 꽂아놓거나 피를 빼는 건데요. 생리적 반응점은 피를 뽑거나 침을 꽂는 것이 아니고 생리적 자극만 주는 거예요. 안마사가 3호침 아래의 침을 써도 한의사들이 문제를 삼아서 아예 침처럼 꽂는 일은 전혀 하지 않고 피부만 건드려요."

_원래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나요?

"아니요. 제가 세 살 때 6.25가 터졌는데 아버지가 전사를 했어요. 어머니는 재혼을 하셨어요.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에 살았는데 할머니네 고모네 삼촌네 그냥 왔다 갔다 했어요. 배를 하도 곯아서 영양실조 때문에 야맹증이 온 거예요. 그때는 저녁밥을 굉장히 늦게 먹었잖아요. 달그락 달그락 상 들어오는 소리가 나도 애가 보질 못하니까 어른들이 동네 무허가 한약방에 데리고 간 거예요. 거기서 눈에서 나쁜 피를 뺀다고 동침(매우 굵은 침)으로 눈을 마구 찔러서 장님이 됐어요. 야맹증이니까 비타민A만 먹었으면 나았을 병인데 그렇게 몰랐던 거지요. 나중에 서울에 있는 맹아학교에 갔더니 눈의 날(11월 11일)이라고 공병우 안과에서 무료시술을 나왔어요. 거기서 공늉?박사(1906~1995)가 제 눈을 보시더니 이 좋은 눈을 버렸다, 그래서 알았지요. 맹인이 되니까 어른들이 무당한테 맡겨서 점술을 배우게 했어요. 그때는 맹인이 먹고 살 수 있는 게 그런 거 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열 여섯살에 서울에 맹아학교가 있다는 걸 알고는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어요. 맹아학교 초등학교 과정에 들어갔는데 제가 공부를 잘해서 두 번이나 월반을 했어요. 그런데 거기는 수업료는 공짜인데 다달이 식비를 내야 해서 계속 다닐 수가 없었어요. 당시 설렁탕 한 그릇에 15원, 공중목욕탕 한번 가는 데 15원, 전차표는 5원에 두 장 할 때거든요. 지금 지하철 1,000원(정확히는 기본요금이 1,050원)이니까 그때 5원이면 지금 2,000원인 셈이네요. 그때 식비가 한 달에 350원이나 했어요. 지방 맹아학교는 식비를 안 받는다고 해서 초등학교 5학년 때 대전 맹아학교로 옮겼다가 중학교 과정이 없어서 중학교는 청주 맹아학교를 졸업했어요. 거기는 선교사들이 하는 학교라서 식비가 안 들었거든요. 교복 사 입으려고 완행열차 타고 다니면서 연필이나 껌을 팔았어요. '대전발 0시50분'이라는 가사 들어간 '대전부르스'라는 노래 알아요? 용산역에서 오후 7시 40분에 출발하면 부산역에 그 이튿날 오전 6시에 도착하는 거에요. 부산서 저녁에 4시 40분 차 타고 대전에 오면 그게 0시 50분이에요. 그러면 거기에서 목포 가는 기차가 기다리고 있어요. 그거 타고 목포로 팔러 가고요. 부산서 오는 열차가 0시 50분에 못 들어오면 그거 기다려줬어요. 그래야 목포 가는 차를 탈 수 있거든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말이 0시 50분이지 0시 50분에 출발 못해요."(웃음)

_맹아학교를 졸업하고는 곧바로 안마사가 됐나요?

"네, 그때는 중학교 과정에서 안마를 가르쳐서 중학교를 졸업하면 안마사 자격증을 줬어요. 지금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자격을 받을 수 있어요."

_그럼 어디에 개업을 했어요?

"1970년 2월에 학교를 졸업했는데 처음에는 막 떠돌아다녔어요. 잘 모르실 거에요. 그때는 안마사들이 안마피리라고 있어요. 밤에 돌아다니면서 안마피리를 불어요. 그러면 사람들이 '안마사'하고 부르면, 가서 안마를 해주는 거예요. 그러다가 1973년에 경북 문경에 정착을 했지요. 그때 거기가 탄광촌이었어요. 탄 캐는 사람들, 탄 사는 사람들, 돈이 막 끌던 곳이라 그리로 갔지요. (유정회 국회의원을 한) 황재홍 의원의 처남 되는 이종철씨라는 분이 거기서 양조장도 하고 여관도 하고 있었는데 그 분의 노모를 매일 안마해드리는 조건으로 방을 하나 얻어서 그 댁 전화번호도 명함에 파서 여관마다 돌렸어요. 여관이 몇 안되니까 여관에 온 손님들이 안마사를 부르면 찾아갔어요. 지금 아내도 문경에서 저한테 치료 받으러 왔다가 만나서 이듬해에 결혼했어요."

_부인은 맹인이 아니고 나이도 훨씬 젊어 보이는데 비결이 뭔가요?(웃음)

"저보다 여섯 살 아래입니다. 내가 잘 살 자신이 있으니 저한테 오라고 했지요. 지금도 집사람이 아프면 제가 만져줍니다. 우리 가족은 병원에 간 적이 거의 없어요. 보험료는 잘 내는데 병원은 안 갔다고 건강보험공단에서 표창까지 받았어요. 아들하고 딸이 다 시집 장가 갔는데 아들은 이비인후과 의사고, 며느리는 약사예요. 딸과 사위는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_애들 똑똑하게 키우는 것도 이 생리적 반응점 자극하고 상관이 있나요?

"있지요. 그런데 이런 손님까지 찾아오면 안되는데.(웃음) 공부 잘한다는 것은 머리가 좋아야 하거든요. 머리 쪽으로 혈액순환이 잘되어야 영양공급 산소공급이 잘되고 림프선 순환이 잘되면 노폐물이 없어져서 좋아요. 뇌까지는 아니라도 어깨와 목에 자극만 줘도 순환이 잘 돼요."

_대전에는 언제부터 살게 된 거예요?

"2003년 7월 31일에 왔으니 올 7월로 만 9년 되네요. 제가 공부를 더 하고 싶은데 문경서는 교통이 나빠서 힘들어요. 고등학교는 검정고시로 마친 다음에 광주에 있는 송원대학교 자연요법과를 졸업했어요. 안마는 약물이 아니라 자연에 따른 치료법 맞잖아요. 저 뿐 아니라 제 후배들도 안마사로 자연요법 전문가라는 게 인정받았으면 좋겠습니다."

_뭐가 문제인데요?

"한의사들이 자꾸 불법의료를 한다고 고발을 해서 검찰에 불려가는 일이 많아요. 원래 우리나라에 침구사 제도가 1914년에 생겼어요. 그때는 안마사가 침 뜸을 할 수 있었어요. 한의사 제도는 51년에 생겼는데 그 후 침 뜸을 한의사가 하도록 되었어요. 이건 법조문에 의한 것이 아니라 보건복지부 유권해석인데, 안마사도 보건복지부 유권해석으로는 3호침 이하는 쓸 수 있도록 되어 있어요. 그런데도 한의사들이 눈도 못 보는 사람이 어떻게 침을 놓느냐고 계속 문제를 삼아요."

_그렇게 말할 수 있겠네요.

"침이라는 거는 눈으로 보고 찌르는 게 아니에요. 침자리가 보이나요? 맥 보고 찌르는 거지. 그건 한의사도 마찬가지에요. 어차피 촉감으로 하는 거니까요. 그런데 촉감은 우리가 더 발달해있어요. 우리는 세상 만물을 다 촉감으로 봐요."

_혹시 후배들이 생리적 반응점을 배우러 오나요?

"네, 그런데 배운다고 누구나 다 익히게 되는 것은 아니에요. 지금은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안마사 자격증을 주니까 아쉬워요. 전문대 수준으로 국립안마대학을 세워서 안마기술도 향상시키고 안마사 자격도 높이면 좋을 것 같아요."

_생리적 반응점이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일반인들한테도 가르쳐주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안마사 자격증 자체가 맹인들한테만 주어지니까 그렇게 할 수 없고요. 일반인들은 경락안마다 스포츠안마다 다 하고 있잖아요. 진짜 안마만은 맹인들이 해야지요. 손으로 제대로 하는 것은 맹인 밖에 없어요. 그리고 후배들한테도 꼭 말하고 싶어요. 돈에 연연하지 말고 사람 몸을 많이 만져보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좌절하지 말고 해봐라."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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