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 결혼, 여성 사제 서품 등을 둘러싼 로마 가톨릭계의 보혁 갈등이 정면충돌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교황이 개혁파의 주장을 "교황의 권위에 대한 불복종"이라고 맹비난하고, 개혁파는 이에 반발해 자신들의 뜻에 따라 실력행사까지 노골적으로 경고하는 상황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5일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전의 부활절 미사에서 "유럽 국가 성직자 중 일부가 순종 서원에 대해 불복종을 표시했다"며 "이는 교회가 이미 분명히 결정한 것들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교황의 발언은 사제의 결혼과 여성 사제서품을 주장하는 가톨릭 내 개혁세력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교황은 개혁세력을 직접 명시하지 않았지만 사제에 대한 교회의 독신 명령을 폐지할 것과 여성 사제서품을 주장해온 오스트리아 성직자 단체인 '성직자 이니셔티브'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교황은 또 "(개혁세력의 주장이) 교회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으로 알지만 (신에 대한 순종보다는)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교회를 급하게 바꾸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2006년 오스트리아에서 결성된 성직자 이니셔티브는 "예수가 남성들만 제자로 삼은 것은 당대의 사회관습 때문"이라며 "여성 사제서품을 통해 사제 부족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해 왔다. 소수로 시작한 이 단체는 현재 300명 이상의 사제와 집사가 참여하는 집단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6월에는 "바티칸이 우리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스스로의 양심을 따라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밖에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오스트리아 주교는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월 바티칸 관계자와 긴급 회동하기도 했다.
교황은 가톨릭의 보수가치에 도전하는 일련의 개혁세력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경고하고 이들의 주장에 쐐기를 박을 필요가 있다고 보고 이런 강경한 입장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베네딕토 16세는 추기경 시절 '신의 충견'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강경한 보수주의자로 유명하다. 피임 낙태 안락사를 반대하고 해방신학을 주장하는 중남미계 사제들을 징계했다.
개혁파는 교황의 발언에 반발했다. 성직자 이니셔티브의 헬무트 쉴러 신부는 "오스트리아 주교들과 마음을 열고 대화하려는 교황의 의지로 받아들인다"면서도 "(여성 사제서품 등은) 우리의 양심과 신념에 따른 것이므로 우리는 계속 이 길을 가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이날 저녁 가톨릭 전통 행사인 세족식 미사를 주관한 교황은 6일 로마 콜로세움에서 십자가의 길 행사를, 7일 부활 전야 미사를 주재하고 부활 주일인 8일에는 성베드로 광장에서 전 세계에 축복의 메시지를 전할 예정이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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