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아몰레드(AMOLEDㆍ능동형발광다이오드) TV 제조기술을 인력스카우트를 통해 LG측이 빼갔다는 경찰 조사결과가 발표된 5일 삼성은 전례 없이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성명을 내고 LG의 최고경영진을 맹렬히 비난했고 공식사과까지 요구했다. 삼성과 LG가 TV분야에서 신경전을 벌인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지만, 이렇게까지 강도 높은 대응이 나온 적은 없었다.
LG측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기술을 훔친 적이 없다"는 반박과 함께 "삼성은 우리 쪽 사람들을 더 많이 데려갔다"고 주장했다. 서로 사람 데려가는 건 이 바닥의 오랜 관행인데, 삼성이 왜 그렇게 오버하느냐는 애기였다.
기술유출여부는 나중에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데려가면서 기술까지 갖고 가는 행태 자체를 관행으로 치부하는 건 분명 잘못된 시각이다. 핵심인력을 통해 기술을 갖고 가는 건, 가장 반(反)시장적이고 가장 불공정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기술이 뒤쳐진 기업이 앞선 기업을 따라잡는 방법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연구개발(R&D)에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투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술을 빼오는 것이다. 적지 않은 기업들은 후자의 방법을 선호한다.
하지만 이것은 범죄여부를 떠나 부도덕한 반기업적 행위다. 인력 빼가기, 기술 빼가기는 주로 대기업이 중소기업 영역을 침범할 때 비난의 대상이 되곤 했는데 대기업 간에도 약탈행위라는 본질은 다르지 않다. 해외유출이든 국내유출이든 죄질은 똑같다.
아몰레드 TV는 LCD TV에 비해 동영상 응답속도가 200배 이상 빠르고 색상과 선명도도 월등한 차세대 TV다. 머지 않아 수십조원대의 시장이 열리게 될 황금어장이다. 엄청난 공을 들여 만든 신기술이 빠져나갔으니 삼성 수뇌부가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세계는 지금 특허전쟁 중이다. 핵심기술이 기업사활을 좌우하는 시대다. 어떤 경우든 기술을 빼가는 건 용납될 수 없다. '공정사회'와 '윤리경영'의 화두에도 어긋난다. 무엇보다 사람을 데려오면서 기술을 함께 데려오는 행태 자체를 '업계 관행'으로 당연시하는 사고부터 바꿔야 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간판 글로벌 기업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져 얼굴을 붉히게 된 건 참으로 유감스런 일이다.
허재경 산업부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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