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걸 아는 척 하는 감독은 자격이 없다."
'난공불락' 동부산성을 함락시킨 이상범(43) 인삼공사 감독의 리더십이다. 이 감독은 6일 원주 치악체육관에서 챔피언결정전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뒤 이 같이 말했다. 그는 "벤치 운영 능력이 떨어진다는 걸 알고 있다. 어르신(선배 감독)들께 전화를 해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물었고 작전을 구상했다"며 "물어보는 게 용기다.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번 시리즈에서 인삼공사의 우승을 예상한 전문가들은 거의 없었다. 동부의 수비력은 역대 최고 수준이었고 전문가들은 인삼공사의 패기 보다 동부의 노련미에 더 후한 점수를 매겼다. 인삼공사는 정규시즌에서도 동부에 1승5패로 열세였다.
하지만 모든 예상은 빗나갔다. 창단 후 처음으로 챔프전에 오른 인삼공사는 거칠 게 없었다. 큰 경기 경험 부족은 선수들이 2~3발씩 더 뛰면서 메웠고 찬스 때마다 자신 있게 슛을 던져 분위기를 주도했다. 이날도 한 때 17점 차로 뒤지고 있었지만 4쿼터 내내 펼친 전면 강압 수비와 선수들의 자신 있는 플레이로 극적인 드라마를 썼다.
값진 우승은 이 감독의 '열린' 리더십이 맺은 결과다. 2009~10시즌부터 인삼공사 지휘봉을 잡은 이 감독은 10개 구단 중 최연소 감독이다. 71년생 문경은(41) SK 감독이 정규시즌이 끝나고 감독 대행 꼬리표를 뗐으니 사실상 이 감독이 올 시즌 막내다. 이 감독은 전지훈련 때부터 선수들과 한 몸이 됐고, "감독은 조연일 뿐 농구코트의 주인은 선수다"라는 철칙으로 한 시즌을 지휘했다.
"작전 타임 때 중계 카메라를 갖다 되면 절대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왜 어제 연습한 거 안 하느냐고 고함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선수 탓을 하는 거다. 무대 위의 주인공들에게 야단 치는 게 카리스마는 아니다." 이 감독은 몇 번이고 이 말을 강조했다.
그는 소통의 리더십을 위해 끊임없이 질문하기도 했다. 이 감독은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건 잘못됐다. 나 또한 때론 선수들에게 물어본다"며 "현장을 지휘하는 선배 감독님들, 김인건 전 감독님의 조언이 있었기에 우승할 수 있었다"고 공을 돌렸다.
지난해 안양 시내에서 맘 편히 소주 한잔도 먹지 못했다는 그는 "감독을 할지 말지 많이 망설였다. 연패에 빠졌을 때는 기자실에 들어오기도 싫었다"며 "당시 선수들에게 정말 미안했다. 괜히 우리 팀에 데려와 무시당하는 게 가슴이 아팠다"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원주=함태수기자 hts7@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