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권력/요아힘 라트카우 등 지음ㆍ이영희 옮김/사이언스북스 발행ㆍ512쪽ㆍ3만원
"근대적인 환경 의식은 식민주의에서 기원했다." 리처드 그로브의 '녹색제국주의'가 주는 메시지다. 제국주의적 침탈의 깃발 아래 지구상의 삼림이 처음으로 급속하게 훼손되면서 샘이 마르고 토양이 갈라지고 기후가 악화되는 등의 사태가 빈발해 서로의 연관 관계가 드러났다는 것이다.
인간과 자연을 한 묶음으로 인식했을 때, 지구의 미래가 올바로 보인다. 그를 위해 독일 빌레펠트대 요아힘 라트카우(69) 교수는 유사 이래 인간에 의해 전개되고 있는 생태학적 변동을 추적하는 데 과반의 지면을 할애한다. 중국, 베니스, 메소포타미아, 그리스ㆍ로마 등 고대 사회의 치수와 관개에 대해 분석해 인간과 환경 문제는 어떤 식으로 긴밀한 관련을 맺게 됐는지를 다양한 차원으로 제시한다.
책은 다시 말해 정치사도, 사회사도, 경제사도 아닌 독특한 관점의 인류사다. 예컨대 말라리아가 어느 특정 시점에 발호하는 것은 문명의 몰락, 즉 배수로 폐쇄와 늪지화 등으로 빚어진 결과였다는 것이다. 자연에 대해 인간이 저지른 과오의 목록은 책의 주요 메시지다. "제국주의의 개선 행진은 쥐와 곤충, 미생물의 개선 행진이기도 했다."(296쪽)
인류사에 광범한 영향을 끼친 페스트의 경우 그 영향은 양가적이다. 인구를 급격히 감소시킨 페스트는 "인간과 자연의 균형을 100년 이상 크게 개선"(209쪽)해 거시적으로 생태계의 자기 규제 메커니즘이라고까지 간주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책은 현재를 포함, 역사를 새로 읽는 렌즈들을 제공한다.
지금 환경을 위협하는 최대의 적은 선진국에서 값싼 에너지가 너무 많다는 사실이며, 구체적으로 그것은 1950년대에 급속히 증가한 온실가스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현재 지구적 차원으로 전개되는 미국화가 최대의 범인이다. 저자는 환경사란 예측되지 않은 것들의 역사라는 관점을 견지한다. 낙관론을 경계하고, 예측 불가능성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길밖에 없다는 단언이 설득력을 갖는다. 나아가 저자는 "지구적 차원의 미국화는 생태적 이유 때문에라도 성공할 수 없다"(330쪽) 고 말한다.
책이 출판되고 3년 뒤인 1986년, 악명 높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터지면서 저자는 유럽 도처에 불려 다니며 환경사 전문가로서 분주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2008년 책이 영어로 번역되면서 역사학계, 환경운동계 양쪽에서 큰 주목을 받게 된 그는 이듬해 미국세계사학회의 도서상까지 받았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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