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터스/리사 프라이스 지음·박효정 옮김/황금가지 발행·480쪽·1만3,800원
태평양 연안국과 세계대전을 치르던 미국은 치명적인 생물학 폭탄 공격을 받는다. 중장년층은 미처 백신을 맞지 못해 몰살 당하고, ‘엔더’라 불리는 노인들과 ‘스타터’라 불리는 청소년들 사이에 새로운 권력 관계가 형성된다. 엔더들은 자신들의 일자리를 보존하려 연장자 고용 보호법을 만들고 미성년자 취업을 불법화한다. 전쟁통에 보호자를 잃은 청소년들은 길거리에 내몰린다. 생존을 위협 받는 아이들을 향해 돈 많은 노인들인 ‘렌터’가 유혹의 손길을 뻗친다. 젊고 아름다운 몸을 빌려 쓰고 다시금 세상을 활보하려는 불법적 욕망에 사로잡힌 이들이다.
미국 작가 리사 프라이스(사진)의 데뷔 소설은 할아버지 세대가 손자 세대를 착취하는 디스토피아를 무대로 한 SF다. 지난달 영어판이 출간된 최신작으로, 흥미로운 설정과 시원시원한 전개가 인상적이다. 주인공은 16세 소녀 캘리. 3년 전까지만 해도 행복한 중산층 자녀였던 그녀는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뒤 심장병이 있는 일곱 살 남동생과 함께 버려진 건물을 전전하며 살고 있다. 동생을 안정적으로 돌볼 수 있는 집이 절실한 그녀는 렌터에게 몸을 빌려주기로 결심하고 ‘바디 뱅크’를 찾아간다. 머리에 이식된 컴퓨터 칩을 매개로 캘리와 렌터 간에 신체 대여가 이뤄진다. 계약엔 과도한 신체 훼손과 섹스를 금지하는 조항이 따라붙는다.
캘리가 바디 뱅크와 계약한 세 번의 대여 중 마지막 것은 한 달 간의 장기 대여. 하루 빨리 동생에게 돌아가고 싶은 조바심 속에 노파 헬레나에게 몸을 빌려준 그녀는 뜻밖의 상황을 맞는다. 깊은 잠에 들었다가 깨어나는 것과 다름 없었던 이전의 대여와 다르게 그녀는 10대 전용 클럽, 헬레나의 집 등에서 수시로 깨어나길 반복한다. 캘리의 몸에 그 자신과 고객 헬레나의 인격이 번갈아 들어서는 것. 또한 헬레나의 침실에서는 소음기 달린 총이 발견된다. 자신의 몸이 대여된 의도를 의심하는 캘리에게 헬레나는 녹음 메시지를 전달한다. 신체 영구 대여를 합법화하려는 상원의원을 암살해 달라는 것. 하지만 클럽에서 알게 된 상원의원 손자인 미소년 블레이크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캘리는 그 부탁을 받아들이길 주저한다. 블레이크의 몸에도 정체 모를 렌터가 숨어있음을 알아채지 못한 채.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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