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코너 우드먼 지음·홍선영 옮김/갤리온 발행·288쪽·1만4000원
한때 억대 연봉의 잘 나가던 애널리스트였던 저자는 파산한 회사의 구조조정을 맡아 직원 400명에게 일일이 해고 통지를 하다 자본주의의 냉정한 현실에 회의를 느끼고 회사를 그만둔다. 그리고 몸으로 부딪치고 발로 뛰며 세계 경제의 현장을 경험하기로 마음먹는다. 바로 자본주의 꽃인 다국적 기업들의 생산 과정을 역추적 하는 것.
이야기는 아메리카 대륙 중간에 있는 나라, 니카라과에서 시작된다. 베테랑 다이버인 저자는 니카라과 잠수부들과의 다이빙을 '내 15년 다이빙 역사상 최악'(25쪽)으로 기억한다. 잠수부들은 낡은 공기통 하나에 의존해 수심 30~40m의 심해에서 바닷가재를 잡는데, 이들 중 대다수가 안전수칙을 무시하고 잠수를 너무 오래, 너무 자주해 혈관이 손상돼 죽거나 불구가 된다. 이렇게 온종일 일해서 잡은 바닷가재는 ㎏당 2만원 안팎의 가격으로 '회사'라 불리는 배 선장에게 넘어간다. 저자는 "이 바닷가재가 '윤리적인' 미국 기업의 상품 진열대나 메뉴에 오르고 있다"(49쪽)고 꼬집는다.
초콜릿, 커피 등 대기업들의 공정무역 제품도 이런 아이러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저자는 비윤리적 이미지를 벗기 위해 비영리환경단체 '열대우림동맹'과 제휴한 영국의 맥도날드를 찾아간다. 하고 많은 방법 중에 맥도날드가 열대우림동맹과 손잡은 이유는 싼 값에 윤리적 마케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무역상품에 최저 가격을 정해 제3세계 농민들의 자립을 돕는다는 공정무역재단도 실상을 들여다 보면 별반 다르지 않다. 공정무역재단 초창기를 함께했던 초콜릿기업 '그린 앤 블랙스'의 설립자 크레이그는 재단이 일반에 알려지자 공정무역 로고를 초콜릿 포장에서 떼어냈다며 그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재단에서 터무니 없는 규정을 내세우며 로고 사용료를 너무 많이 요구했습니다. 처음엔 2퍼센트라고 했다가, 좀 있다가 3퍼센트, 또 금방 4퍼센트를 달라고 했습니다. 얼굴이 어떻게 그리 확 변하는지."(72쪽)
이렇게 정떨어지는 얘기만 있는 건 아니다. 저자는 모든 나라에 기적적인 성공 스토리가 한둘씩은 꼭 있었다고 말하며 코트디부아르에 진출한 다국적 농산품 기업 올람, 영국의 소규모커피회사 '에시컬 어딕션'과 최고급 홍차회사 '레어 티 컴퍼니'를 소개한다. 이 기업들은 생산자들을 파트너로 여기고 장기투자의 관점에서 안전한 노동환경을 제공하고, 제값을 쳐 재료를 구매한다.
저자는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를 낳는 건 아니다'는 자본주의 냉혹한 논리에 맞서 자신의 여행담을 일일이 소개하며 이렇게 말한다. '대기업이 사업을 유지하고 수익을 내기 위해 가난한 사람을 착취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 대기업이 그들을 구제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럴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270쪽).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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