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가치가 떨어졌다곤 하지만 100만원은 여전히 큰 돈이다. 더욱이 월급 일부를 도로 직장에 떼주기는 더 쉽지 않다. 그러나 이 거금을 흔쾌히 직장에 기부한 직원들이 있다. 서울대 중앙도서관 사서들이다.
서울대는 지난달 초 시작한 중앙도서관 신축 기금 모금 캠페인 '서울대 도서관 친구들'에 도서관 사서 직원 100명 중 53명이 동참했다고 5일 밝혔다. 사서 2명 중 1명 꼴이다. 이들 중 100만원 이상을 한꺼번에 기탁한 직원도 30명이나 된다.
'릴레이 기부'의 첫 테이프를 끊은 사서는 서울대 도서관에서만 29년을 일한 장준수(53) 주무관. 지난달 7일 서울대 중앙도서관을 찾아와 "도서관 신축에 써 달라"며 현금 100만원을 낸 첫 기부자가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는 27세 고졸 청년이란 사실이 알려진 게 계기가 됐다. 장 주무관은 "국내 최고 대학 도서관의 시설 노후화가 늘 안타까웠던 차에 외부인이 먼저 기부했다는 소식을 듣고 미안한 마음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사서 대부분이 선택한 100만원이란 금액도 첫 기부자가 낸 돈이 기준이 됐다. "서울대 학생들과 비슷한 나이 또래의 고졸 아르바이트생도 100만원을 냈는데 도서관 직원들이 그보다 더 적게 낼 순 없지 않느냐"는 공감대가 사서들 사이에서 형성됐다는 것이다.
장 주무관이 지난달 9일 100만원을 내놓은 뒤 지난해 11월 결혼한 홍주연(29ㆍ여) 주무관은 축의금 일부를 쾌척하는 등 고참 사서에서부터 젊은 사서들까지 속속 기부 행렬에 가세했다. 김기숙(41ㆍ여) 주무관은 "캠퍼스 전체를 아우르는 도서관 대상 기부가 서울대 단과대 기부보다 외려 적어 사서들이 마음을 모았다"고 했다. 김미향 서울대 중앙도서관 기획홍보실장은 "도서관 사서는 다른 행정직과 달리 도서관 한 곳에서만 평생 근무하기 때문에 도서관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남다르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서울대가 1974년 건립 이후 40년 만에 중앙도서관 신축을 추진하는 건 만성적인 공간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학생 1인당 도서관 연면적은 연세대가 2㎡, 고려대가 1.3㎡인데 비해 서울대의 경우 0.6㎡에 불과하다. 서울대는 2014년 2월까지 1,000억원을 모금, 기존 중앙도서관 본관을 개축하고 신관을 새로 짓는데 쓸 계획이다. 윤문자(56ㆍ여) 주무관은 "도서관이 하루바삐 다시 태어나 적어도 학생들이 자리 없어서 공부 못했단 얘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지향 서울대 중앙도서관장은 "목표 금액도 중요하지만 도서관 친구들을 늘리는 게 이번 캠페인의 더 큰 목적"이라며 "사서 직원들의 적극 참여가 동문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데 큰 동력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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