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갑 유권자분, 투표 꼭 하실 거죠? 기호 O번 OOO당 OOO후보 기억해 주세요."
경기 성남시 분당에 사는 직장인 이모(33)씨는 4일 오후 19대 총선에 출마한 한 지역구 후보의 선거사무실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자신의 전화번호를 알려준 적이 없는데도 사는 곳 등 개인 정보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씨가 개인정보를 어떻게 알았는지 선거사무원에게 따져 묻자 "선생님의 동네 이웃이 가르쳐 줬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이씨는 "쭉 서울에 살다가 이사온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동네에 아는 사람도 없다. 지인이 연락처를 알려줬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어리둥절해 했다.
19대 총선 투표일을 엿새 앞둔 5일 유권자들은 출마자들의 전화 선거운동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여론조사나 투표 독려를 빙자한 전화 홍보는 물론 각종 문자 발송 선거운동까지 유권자의 전화가 잠잠할 새가 없다. 유권자들은 전화번호부터 출신 지역, 학교 등 개인정보까지 은밀히 입수한 후보들의 선거운동 공세에 불안감마저 느끼는 상황이다.
서울 중랑구에 사는 직장인 정모(41)씨는 대학교 선배라는 한 후보 지지자로부터 전화를 받은 경험이 있다. 이 지지자는 다짜고짜 "OO대 83학번 선배인데 이번에 후배(정씨)가 사는 지역구에 우리 학교 선배가 출마를 했다"며 지지를 부탁했다. "누가 연락처를 알려줬느냐"고 묻자 그는 얼버무리다 곧 전화를 끊어버렸다.
지역구와 상관 없이 '묻지마 선거 문자 메시지' 폭탄을 맞는 일은 다반사다. 출산 휴가 중인 직장인 최모(30)씨는 하루의 절반 이상 전화기를 꺼놓는다. 그는 "전혀 관련도 없는 후보까지 포함해 많게는 하루 5, 6건에 달하는 선거홍보 메시지를 받는다"며 "기껏 재워 놓은 아이가 잠을 깨기라도 하면 너무 화가 난다"고 말했다.
공직선거법(제59조)에 따르면 후보가 선거운동기간 보낼 수 있는 휴대전화 단체(20인 이상) 홍보 문자메시지 전송은 5회가 한도. 하지만 카카오톡 등 스마트폰 앱을 이용한 무료 문자메시지 발송은 예외로 두자 카카오톡을 이용한 무차별 문자 공세도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후보들이 선거운동에 이용하는 개인정보 수집 행태에 대해 제재 수단이 거의 없다는 게 문제다. 전화 선거운동 공세에 시달렸다는 오모(53)씨는 "지역 선관위에 문의 했더니 수신 거부를 했는데도 연락을 계속 하면 문제지만 지인에게 연락처를 받았다면 문제가 안 된다고 하더라"며 혀를 찼다. 개인정보보호법(제16조)상 수집 가능한 정보도 이름, 전화번호, 생년월일, 주소 정도이며 정보 출처도 당사자가 요구하면 즉시 알려야 하지만 이를 지키는 후보들은 없다. 선관위도 이를 거의 점검하지 않을뿐더러 수단도 마땅치 않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후보들의 개인정보수집 경로를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는 문제"라며 "피해자가 직접 수사기관에 신고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속 박주민 변호사는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치를 때마다 매번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활용하는 등 기본권 침해 논란이 반복되는 것은 모순"이라며 "수사기관은 물론 선관위에서 보다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채희선기자 hsch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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