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제약협회 결성 이후 한 목소리를 내오던 제약업계가 사상 처음으로 분열 위기를 맞고 있다. 대형제약사들이 중소제약사 중심의 제약협회에 반기를 들고 사실상 독자노선을 선언한 것인데, 일각에선 "이러다가 쪼개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6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동아제약 녹십자 대웅제약 유한양행 한미약품 JW중외제약 종근당 명인제약 등 8개사 CEO들은 지난 4일 모임을 갖고 가칭 '제약산업미래혁신포럼'라는 협회를 결성하기로 합의했다. 8개사가 우선 발기인으로 참여해 다음달 중 사단법인체를 발족할 예정이다.
신설협회를 출범한 이유로는 신약개발 중심으로 이익을 대변할 창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내세웠다. 8곳에 포함된 한 제약사 CEO는 "기존 제약협회를 탈퇴하거나 제2의 협회를 만들려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연구개발(R&D)에 초점을 둔 새로운 기구가 필요한 만큼 이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실제로 포럼 결성에 나선 제약사들은 모두 R&D 능력을 보유한 대형 제약사들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곪은 상처가 결국 터졌다'는 시각이다. 대형제약사와 중소제약사의 결별은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지적이다.
발단이 된 것은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약가인하 정책이었다. 정부가 제네릭(복제약) 중심의 국내 제약사의 체질을 바꾸겠다며 큰 폭의 약가인하 방안을 발표하자, 제약업계는 한목소리로 반대에 나섰다. 하지만 정부의 입장이 워낙 강경한 탓에 차츰 자중지란의 양상을 보였다. 정부가 제시한 혁신형 제약기업에 선정될 가능성이 높은 상위 대형제약사들의 경우 정부와의 대립보다는 타협을 원했지만, 복제약 위주의 중소형사들은 존폐위기에 처한 만큼 강경한 노선을 굽히지 않았다.
급기야 지난 2월 중소제약사들은 대형사 위주의 기존 제약협회에 반기를 들고 정기총회에서 중소사인 일성신약의 윤석근 사장을 새 이사장으로 선출했다. 이에 대형사 중심의 옛 이사진은 회비납부를 거부하는 등 사실상 중소제약사 중심의 새 이사진을 보이코트해 왔다. 제약협회가 주도한 정부 상대 소송전(약가인하 취소소송)에 5개 중소형사만 참여한 것도 이 같은 사정 때문이었다.
포럼을 결성한 대형사들은 당장 제약협회를 깨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각자의 길을 걷게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포럼 결성으로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라며 "200여개 제약협회 회원사 가운데 몇 개가 포럼에 합류할지 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현재 20~30개사가 추가로 포럼에 참가의사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수적으론 중소제약사에 크게 못 미치지만, 중대규모 제약사들이어서 기존 제약협회로선 심각한 타격이 예상된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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