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그는 신(神)의 부름을 기다리던 신학도였다. 신학교 선배들이 대입 예비고사에 줄줄이 낙방하는 걸 보고 신부가 되더라도 보통 학생들과 같은 공부를 좀 해보고 돼야겠다 싶어 일반 고교 3학년에 편입했다. 그렇게 삶이 바뀌었다. 지금은 사제 예복 대신 흰 가운을 입고, 성경 대신 메스를 든다.
고영초(59) 건국대병원 감마나이프센터장이 신부 대신 의사를 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가장 비슷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직자가 마음을 치유한다면 의사는 몸을 치유한다. 특히 그가 매일 들여다보는 뇌는 첨단의학조차 여전히 어려워하는 인체의 성역이다.
어디 생겼느냐가 관건
"뇌종양 수술은 두개골을 열어야 해요. 두개골 아래는 뇌를 둘러싸고 있는 경막이고, 경막 밑엔 연질막이 덮여 있어요. 연질막까지 열어야 비로소 뇌가 나오죠. 수술의 성패는 종양까지 어떻게 도달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종양이 뇌 한가운데 있을 때 접근하기가 제일 어려워요. 뇌 겉부분인 피질을 바로 뚫고 들어가면 후유증이 클 수 있거든요. 좌반구와 우반구 사이나 주름(고랑)과 주름 사이를 살짝 벌리고 틈을 만들어 들어가야죠."
고 센터장이 말하는 '틈'은 1㎝도 안 된다. 그 사이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서 바늘처럼 가는 기구를 집어넣어 숨바꼭질하듯 종양을 찾아내는 것이다. 어렵게 찾아내도 중요한 혈관이나 신경이 감싸고 있거나 정상 뇌조직과 구별이 잘 안돼 떼내기가 쉽지 않다. 혈관 잘못 건드렸다간 환자가 수술대 위에서 사망할 수도 있다. 보통 인내심으론 어림 없다.
"뇌종양은 크기보다 위치가 문제에요. 뇌의 4분의 1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큰 종양도 겉부분에 있으면 어렵잖게 떼낼 수 있죠. 반대로 아무리 작은 종양이라도 뇌 속 깊숙이 자리 잡았으면 경험 많지 않은 의사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어요."
뇌 속 깊은 곳에는 시신경 청신경 등 중요한 신경들이 지나가기 때문에 수술에 문제가 생기면 자칫 눈이나 귀가 멀거나 신체 일부가 마비될 위험도 있다. 이런 이유로 다른 병원에서 수술이 어렵다는 말을 들은 많은 환자들이 고 센터장을 찾아온다.
"감마나이프 덕분에 예전엔 엄두를 못 내던 수술도 가능해졌어요. 예를 들어 뇌 심부에 있는 혈관에 기형이 생긴 경우 두개골을 여는 수술을 시도하는 건 쥐 잡으려다 장독 깨는 격이 되죠. 이런 수술엔 감마나이프가 필수에요. 두개골 열고 수술하기엔 너무 작은 종양이나 다른 조직의 암이 뇌로 전이된 경우도 감마나이프가 적합하지요."
감마나이프는 머리에 방사선의 일종인 감마선이 나오는 특수기구를 쓴 채 칼을 대지 않고 감마선을 쪼여 머릿속 종양 등을 파괴하는 첨단의료장비다. 몸 속으로 들어간 감마선의 에너지는 대부분 종양을 태우는데 쓰이고, 아주 소량만 종양 주변 조직에 영향을 준다.
"정말 많이 발전했어요. 내가 의대 다니던 시절만 해도 뇌종양 수술은 했다 하면 서너 명 중 한 명 꼴로 사망했으니까요. 요즘은 흔한 컴퓨터단층촬영(CT) 장비마저 그땐 없어서 혈관에 바늘을 꽂아 약물을 넣어서 진단해야 했어요."
당시 고 센터장의 아버지도 교통사고로 뇌수술을 받고 깨어나지 못했다. 요즘 같으면 5분만에 영상 찍고 한두 시간에 끝날 수술을 그땐 진단만 3시간, 수술은 5시간 넘게 걸렸다.
"사실 내과를 좋아했었는데, 아버지 같은 환자를 치료해야겠다 싶어서 미개척분야인 뇌신경외과로 진로를 바꿨죠. 의대 졸업하던 1977년 드디어 국내에 CT가 들어왔고, 이후 현미경수술도 시작됐어요. 그러면서 뇌수술이 급진전했어요. 이젠 전체 뇌종양의 약 55%는 수술만으로 완치가 가능합니다."
그래도 어려운 병
하지만 여전히 뇌종양은 쉽지 않은 병이다. 수술해도 재발하는 사례가 잦고, 정확한 원인도 아직 모른다. 증상도 머리가 아프거나 어지럽거나 눈이 침침해지는 등 다른 병과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체를 모르는 것까지 치면 종류가 100여 가지는 된다.
"수천 가지 뇌종양을 봐왔지만 똑같은 게 없어요. 사람마다 지문이 다른 것처럼 뇌종양도 질감, 끈끈함, 단단함, 출혈 정도 등이 다 다르죠. 색깔도 회색부터 흰색, 검붉은색, 심지어 노란색까지 다양해요. 뇌에 워낙 여러 가지 세포가 있어서라고 추측됩니다."
고 센터장이 가장 무서운 뇌종양으로 꼽는 건 교모세포종이다. 최근 신경외과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에서 주인공 이강훈(신하균)의 어머니(송옥숙)가 걸린 병이다. 아무리 수술 잘 하고 좋은 항암제를 써도 20개월 넘기기가 힘들다. 수술 후 거의 100% 재발한다.
"그래도 몇 개월 더 살릴 수 있잖아요. 신경외과 의사가 그래서 있는 거 아닐까요."
어려운 병인 만큼 이겨내야 하는 환자도 힘들다. 얼마나 고생하는지 잘 알기에 고 센터장은 자신에게 수술 받은 환자들의 신상을 일일이 기억하게 된다. 누구는 컴퓨터 관련 회사에 다니고, 누구는 수술 후 나이 예순에 신학교에 들어갔고, 누구는 최근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고…. 컴퓨터에 저장돼 있는 뇌 영상만 보고도 그 환자 이야기를 술술 읊어낸다.
"1985년 처음 뇌종양 수술을 한 환자가 17살 여자아이였어요. 마흔이 넘었는데 지금까지 내게 진료를 받아요. 첫 수술은 깨끗이 잘 됐지만, 다른 자리에 재발하는 바람에 수술도 몇 차례 더 해줬죠. 처음 수술할 땐 몰랐는데, 유전적인 문제 때문에 생기는 드문 뇌수막종이더군요. 결국 딸도 같은 종양이 생겼어요. 딸은 내 제자에게 수술 받았죠."
유전 영향이 크고 재발 잦은 뇌종양이 환자와의 인연을 끈끈히 만들어주는 셈이다.
병원 밖 봉사 40년
고 센터장과 인연을 두고 있는 환자들은 그가 몸 담고 있는 병원 밖에도 많다. 의대 재학 시절부터 의료봉사를 해온 지가 40년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고 김수환 추기경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전진상의원과 라파엘클리닉, 요셉의원에서 한 달에 서너 번 무료진료를 한다. 여든 될 때까지 의료봉사를 계속하고 싶다고 한다.
"신학도였다가 의사가 되고, 내과를 하려다 집도의가 된 게 모두 계획된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인생의 방향이 바뀌는 큰 결정인데도 그 순간마다 전혀 망설이지 않았거든요. 의료봉사는 신에게 한 개인적인 약속입니다."
의사로서 그가 가장 경계하는 건 돈 욕심이다. 일단 아픈 사람 돕는 의사가 됐다면 돈 많이 벌 생각은 말라는 거다. "돈은 먹고 살 정도면 돼요. 의사는 신에게선 재능을 받고, 사회에선 혜택을 받는 사람입니다. 돈 밝히지 말고 진료에 전념해야죠. 가능하면 봉사도요. 의료상업화요? 안 되죠."
■ 고영초 교수와 감마나이프 일문일답/"작거나 전이된 뇌종양 치료에 효과적"
Q. 뇌종양은 다 감마나이프 수술이 가능한가.
A. 아니다. 종양 지름이 2.5㎝보다 작아야 고려한다. 수술 후 조금 남은 종양, 뇌 아주 깊숙이 생긴 종양, 다른 조직에서 뇌로 전이된 종양일 때 감마나이프 수술이 효과적이다.
Q. 사이버나이프와 뭐가 다른가.
A. 머릿속 암을 치료하는 감마나이프와 달리 사이버나이프는 모든 장기에 사용된다. 장기와 함께 움직이는 암을 제거할 땐 방사선이 나오는 입구가 로봇 팔처럼 움직이는 사이버나이프가, 한 곳에 머물러 있는 머릿속 암엔 감마나이프가 적합하다. 방사선 종류도 다르다.
Q. 일반 방사선 치료보다 안전한가.
A. 일반 방사선 치료는 하루에 2, 3그레이(Gy)의 선량을 30~40회 뇌에 가한다. 이 중 적잖은 양이 종양으로 가는 도중 정상 뇌세포로 들어가기 때문에 인지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감마나이프는 일반 방사선 치료의 약 10배 선량을 한꺼번에 짧은 시간 동안 집중해서 주므로 주변 정상세포에 거의 해를 미치지 않는다. 인지기능 저하 가능성이 훨씬 적다.
Q. 수술 후 후유증은 없나.
A. 수술 당일은 두통이나 메스꺼움이 있을 수 있으나 금방 회복된다. 수술할 때 머리를 고정하는 부위에 상처가 나기도 하는데, 수술 후 아물면서 없어진다. 머리카락이 부분적으로 빠지는 경우도 있지만, 수개월 안에 다시 자란다. 수술 후 평소대로 식사할 수 있고, 세수는 수술 후 2일부터, 샴푸로 머리 감는 건 3일부터 가능하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