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의 야구 인생을 마감하던 날.'바람의 아들'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프로 19년을 정리하려는 순간 지나온 영광과 고뇌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고,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솟아나왔다. 시대를 풍미한 '야구 천재'는 그렇게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그라운드와 작별했다.
지난달 31일 전격 은퇴를 선언한 이종범(42)이 5일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갖고 은퇴까지의 과정과 솔직함 심경, 제2의 야구 인생 설계에 대해 담담하게 밝혔다. 이종범은 "분에 넘치는 사랑으로 여기까지 왔다. 갑작스러운 은퇴 선언으로 팬과 선ㆍ후배, 구단 관계자들에게 죄송하다"고 차분히 첫 인사를 전한 뒤 "그러나 결코 갑작스러운 은퇴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은퇴 문제가 처음 불거진 2008년부터 대주자, 대수비로도 팀에 도움이 될 수 없다면 미련 없이 옷을 벗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나의 은퇴 조건은 그것뿐이었다"고 말했다. 선동열 감독과의 불화설로 번져 모양새가 좋지 않았던 이번 은퇴 발표에 대해 선 감독의 권유에 앞서 자신의 다짐에 대한 책임이었음을 강조한 것이었다.
이종범은 "설령 개막 엔트리에 포함됐더라도 시즌 초반 만족할 만한 성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과감하게 옷을 벗을 준비가 돼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주전 자리를 보장 받았더라도 4, 5월까지 해 보고 실력이 안 나오면 감독님과 구단에 (은퇴) 얘기 할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차분히 심경을 전하고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하던 이종범은 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19년간의 프로 생활 중에 슬럼프 때마다 곁에서 힘이 돼 주던 가족들을 떠올리자 감정이 북받친 것이었다. 호흡을 수 차례 가다듬으며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이종범은 "난 행복한 선수였다. 사랑하는 집사람과 아들, 딸이 없었다면 힘을 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범은 신인이던 93년 한국시리즈 우승과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일본전 2루타로 한국을 4강에 이끌었던 것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고,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해 가와지리의 투구에 맞아 팔꿈치 부상을 당했던 때와 국내로 복귀 뒤에도 투구에 얼굴을 맞는 부상을 당했을 때를 힘들었던 시기로 떠올렸다. 그는 "내 야구 인생은 노력 이상 없었다. 평범한 체구로 다른 선수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노력밖에 없었다"며 '야구 천재'의 이면에 가려졌던 피나는 노력을 회상했다. 애착이 가는 기록으로는 앞으로도 깨지기 힘든 94년 시즌 최다 도루(84개)를 거론하며 "도루에서 인생을 배웠다. 야구 선수인 내 아들 정후가 그 기록을 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종범은 구단의 제의를 일부만 수용한 것에 대해서는 "코치 연수는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시절에도 2군 경험 등으로 대신해봤다"면서 "무엇을 할지는 결정하지 않았지만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 더 많이 보고 배운 뒤 언젠가 타이거즈 유니폼을 다시 입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구단의 배려로 은퇴식은 하겠지만 은퇴 경기는 팀에 방해가 될 수 있어 사양했다"고 말했다.
이종범은 기자회견을 모두 마친 뒤 "정말 감사했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외친 뒤 취재진에게도 엎드려 큰 절을 했다.
성환희기자 hhs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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