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충렬 전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이 장진수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에게 전달한 5,000만원이 '관봉' 형태의 돈다발이었던 것이 4일 확인되면서 검찰 수사가 일대 전환점을 맞았다.
장씨가 입막음용으로 받은 총 1억1,000만원의 돈이 전액 현금이라 출처 규명에 어려움이 예상됐지만, 관봉은 특이한 형태의 돈다발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추적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검찰이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사건의 '윗선' 규명이라는 수사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지름길이 나타난 셈이다.
한국일보가 지난 3일 최초 보도한 대로 장씨가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돈다발은 전형적인 관봉 형태였다. 관봉은 한국조폐공사에서 한국은행에 신권을 납품하기 위해 지폐 100장씩을 띠지로 묶은 뒤 10다발을 포개 비닐로 밀폐 포장한 것으로, 지폐 일련번호가 순차적으로 배열돼 있다. 장씨는 지난해 4월 류 전 관리관으로부터 5,000만원을 받아 그냥 보관하고 있다가 한 달 뒤인 5월17일 전세자금을 갚는데 쓰려고 꺼내기 직전에 사진을 찍었다. 장씨는 "워낙 특이한 형태라 기록으로 남겨두려고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뒀다"고 말했다.
이날 공개된 사진에서는 5만원권 신권이 100장씩 묶인 돈다발 10뭉치의 모습이 또렷이 보인다. 시중은행에서는 돈다발에 띠지 한 장을 묶지만, 한국은행에서는 사진에 드러난 것처럼 가로세로 십자가 모양으로 띠지를 묶는다. 띠지 겉면에 '품명: 한국은행 오만원권' 및 '수량: 1,000장'이라고 표기된 것은 관봉이란 사실을 재차 확인해주고 있다. 특히 지폐 왼쪽 위에 'CJ0372001B'부터 'CJ0373OOOB'까지 연속적으로 일련번호가 적혀 있는 점도 관봉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관봉 형태의 돈다발이 시중에 유통되는 경우는 드물다는 점에서 류 전 관리관이 장씨에게 건넨 돈이 정상적 방식으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은 거의 확실해졌다. "직원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이라고 말했던 수사 초기 류 전 관리관의 해명도 사실상 거짓으로 드러난 셈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관봉은 시중은행과 거래할 때만 사용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5,000만원이라는 거액을 관봉 형태로 소지하기는 쉽지 않다"고 전했다. 검찰 특수부 출신의 변호사도 "특수수사를 많이 해봤지만 이 같은 형태의 돈다발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5,000만원의 출처와 유통 경로가 검찰 수사로 밝혀질지가 최대 관심사로 부상했다. 우선 한국은행이나 시중은행에서 관봉 형태의 거액을 직접 인출할 정도라면 이들 기관을 컨트롤할 수 있는 힘있는 세력이 개입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 자금의 출처를 놓고 정부 예비비나 특수활동비, 국세청 자금, 정권실세의 비자금이라는 추측이 제기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시중은행이나 은행 영업점에도 한국은행에서 내려보낸 관봉이 보관돼 있기 때문에 은행과 거래가 잦은 우량고객 등이 관봉의 주인일 수도 있다. 이럴 경우 개인이 한번에 5,000만원을 현금으로, 더구나 관봉 형태로 인출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기업의 뭉칫돈일 가능성에 더 무게가 실린다.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 가운데 검찰은 류 전 관리관을 조만간 소환해 자금 출처를 집중 추궁할 계획이다. 류 전 관리관은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돈을 건넨 것은 맞지만 출처는 검찰에서 말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자금을 어디에서 마련했는지 알고 있음을 시사했다. 검찰이 돈의 출처를 밝힐 수 있는 결정적 단서를 확보하고도 자금 추적에 실패할 경우 비판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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