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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詩로 여는 아침] 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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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詩로 여는 아침] 봄밤

입력
2012.04.0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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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봉은 한 봉지에 백 개

부어오른 목 안으로 늙은 의사는

누런 불빛을 갖다 대었다

그렇지

새들은 한 마리가 죽으면

떨고만 있지

있지

오리기구를 타고 혼자 떠는 저수지

저녁은 오래된 약통 속의

먼지를 바라보네

약봉지에 적힌 누런 이름과 나이들

내 이름도 있고 당신 이름도 있네

시계를 벗으면

손목의 흰 테두리처럼

후두둑 불려가는 것들로 봄비 번진다

밤새

남은 새

몸에서 밀려오는 요의(尿意)

영화 '프리티 우먼'에서 가장 인상적 장면이 뭐였냐고 물으신다면? 거리의 아가씨로 분한 줄리아 로버츠가 백만장자 리처드 기어와 함께 베르디의 '춘희'를 보러 가죠. 난생 처음 오페라를 감상한 뒤 소감이 어땠냐는 귀부인의 질문에 천진한 표정으로 그녀는 말합니다. "너무 좋아 오줌 쌀 뻔 했어요!" 아, 그래요. 정말 아름다운 건 몸이 먼저 반응하지요. 우리를 쿡쿡 찌르고 두드리는 것을 따라 몸 밖으로 나가고 싶은 이 마음, 아니 이 몸. 오래된 약통 속에 알약들은 먼지와 함께 남겨둡니다. 이렇게 고집부리며 계속 앓다 보면 누군가 요의를 느낄 만큼 멋진 인생, 아름다운 작품 같은 것을 완성할 수 있을까? 봄밤에서 이 아침에 이르기까지 밤새 되물으며 애쓰던 사람 하나 있겠지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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