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을 만나면 먼저 국립대전현충원에 묻혀 있는 아버지를 찾아 갈 거에요. 그리고 아버지가 평생 그리던 고향 경북 청도에 있는 선산을 찾아 할아버지 묘소에도 성묘를 해야죠. 대한민국이 이렇게 발전했다는 걸 동생은 모릅니다. 버스 지하철 타고 서울 시내 구경도 시킬 겁니다.”
중국 내 한국 공관에서 3년 간 체류하던 탈북자 백영옥씨 일행이 지난 1일 한국에 극비리에 입국했다는 소식을 들은 언니 백영숙씨는 4일 “동생의 입국 소식에 만감이 교차했다”며 이 같이 말했다.
아버지 백종규 하사는 6ㆍ25전쟁 중에 인민군 포로로 잡혀 함북 온성으로 끌려간 뒤 평생을 광부로 일했다. 백 하사는 1997년 “시신이라도 고향의 선산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긴 채 숨을 거뒀고, 영숙씨는 2004년 아버지의 유해를 들고 탈북해 한국에 들어왔다. 백종규씨 유해는 ‘국군포로 유해송환 1호’로, 대전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영숙씨는 “한국에 왔을 때 느꼈던 설레임과 두려움 그리고 내가 한국으로 온 이후 고초를 겪어야만 했던 동생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까지 오만가지 생각이 난다”며 “그래도 ‘아, 동생이 왔구나. 좋구나’ 이런 생각이 더 컸다”고 말했다.
영숙씨의 탈북 이후 북에 남아있던 동생 영옥씨는 고초를 겪었다. 언니가 남한에 갔다는 이유로 사상교육을 받을 때마다 비판을 받아야 했다.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도 영옥씨 가족들에겐 견디기 힘든 시련이었다. 참다 못한 영옥씨는 18세, 14세이던 남매를 데리고 2009년 5월 탈북한 뒤 중국 베이징(北京)의 한국총영사관에 머물러 왔다.
영숙씨는 “동생이 3년 동안 중국에 머물러 있었지만 면담도 안 돼 얼굴 한 번 못 봤다. 1년에 3, 4번 전화통화만 간신히 할 수 있었다. 동생도 한동안 우울증으로 고생했다고 들었다. 만나면 위로부터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영숙씨는 또 “동생에게 우선 TV를 선물할 예정이다. TV를 봐야 한국 사회를 알고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까. 동생은 한국에 오면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어떻게 정착할 것인가 걱정을 많이 하던데 정부와 주위에서 많은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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