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들어올 거냐 물으면 사장한테 물으라고 답한다. PD에게 프로그램은 자식이다. 그런데 던져 놓고 나왔다. 더 이상 부끄럽지 않기 위해."
4일 오후 KBS 새노조 사무실. '개그콘서트'의 서수민 PD를 비롯해 '1박2일'최재형 PD, '불후의 명곡' 고민구 PD, '승승장구' 박지영 PD와 라디오국, 다큐멘터리국 등 PD 8명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들은 "시청자에게 얼굴을 들 수 없게 죄송하다"면서 '자식 같은' 프로그램에서 손을 떼고 싸울 수밖에 없는 현실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두 달을 넘긴 장기파업으로 방송이 중단된 '무한도전' 등 MBC 예능 프로그램에 이어 KBS 예능 대표주자 '1박2일'도 파행하고 있다. 6명의 연출진 중 프리랜서 PD 2명을 제외한 새노조 소속 4명이 지난달 말 파업에 동참했다. 지난주에는 프리랜서 PD들이 미리 찍어놓은 영상을 짜깁기해 방송을 내보냈지만, 당장 이번주 예정됐던 5,6일 녹화가 취소됐다.
더구나 최재형 PD는 국민예능으로 불리는 '1박2일'을 새로 맡은 지 한달 남짓이라 고민이 많았다고 착잡한 심정을 밝혔다. 야외촬영 위주인 '1박2일'은 PD의 역할이 절대적이어서 스튜디오 촬영하는 '개그콘서트' 등과 달리 타격이 더 크다. 개콘은 파업 초반부터 참여한 서수민 PD 대신 전 연출자가 맡아 큰 차질을 빚지는 않고 있다.
사실 예능 프로그램은 노조가 다투고 있는 공정성 훼손 문제와는 거리가 있지만, 예능 PD들은 파업 정당성을 호소하는데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스타 PD들이 나서고 인기 프로그램이 파행해야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날 기자회견에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취재진이 몰렸다. 새노조 관계자들은 최근 정국을 흔든 사찰 문건을 폭로한 '리셋 KBS 뉴스9' 기자회견 때보다 더 많은 기자가 왔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추적 60분'이 세 차례 결방되고 예능이 스페셜편으로 나가고 있지만 어떻게든 대체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어 시청자들이 체감하는 방송 차질은 아직 그리 심각하지 않다. KBS 측은 파업 얘기를 감추고 '편성상의 선택'이라고 둘러대지만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다. KBS가 제작진의 결정이었다고 강변한 김미화, 윤도현, 김제동의 하차에 대해 PD들은 다른 증언을 하고 있다. 이날 '소비자고발'의 권혁만 PD는 "연예인 사찰 정황 등을 보도해야 할 방송사가 'MC선정위원회'를 만들어 이른바 소신 발언을 하는 사람을 솎아내는 데 앞장섰다"며 이들의 하차에 유무형의 압박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KBS 새노조는 이날로 파업 30일째, 2007년 기록을 깨고 최장기 파업에 돌입했다. 방송ㆍ통신ㆍ신문사가 초유의 동시파업을 하고 있지만, 당장 출퇴근에 지장을 받는 교통분야 등의 파업과 달리 시민들의 체감온도는 낮은 편이다. 좋아하는 예능프로그램을 못 보는 것으로 인한 사소한 분노가 공정방송을 위한 이들의 투쟁에 힘을 실어줄 불씨가 될 수도 있겠다.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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