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된 국내 건설경기로 줄어든 일감에다 불공정 하도급 계약이 늘어나면서 영세 전문건설사들은 최악의 상황에 처해있습니다."이종상(사진) 대한전문건설공제조합 이사장은 4일 서울 신대방동 조합 본사에서 한국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건설산업의 토대를 떠받치고 있는 전문건설업계의 붕괴를 막기 위해 표준하도급계약서 작성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며 현재 건설업계 상황의 심각성을 호소했다.
공사발주에서부터 설계, 시공, 마감, 준공에 이르기는 수십여 공정에는 적게는 10여개 업체에서 많게는 100여개 관련 업체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이런 건설현장은 상생(相生) 정신이 가장 절실한 분야지만, 잘 지켜지지 않고 감독기관의 관심도 적은 사각지대다.
이 이사장은 "현재 건설업계 위기는 글로벌 금융위기나 경기침체, 저성장 고착화에 따른 공사 발주물량 감소 등 구조적 원인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약자의 생존을 위협하는 불공정 계약 관행만 개선돼도 극복 가능하다"며 "원청업체가 표준하도급계약을 부당하게 변경해 하청업체를 쥐어짜는 이중계약이 만연해 있는 점이 국내 건설산업의 기초를 흔드는 가장 큰 위험요소"라고 지적했다.
이 이사장은 "공사물량 감소와 경쟁과열에 따른 저가수주 등의 여파로 4만5,600여 회원사 중 지난해 3,637곳이 문을 닫았다"며 "9곳 가운데 1곳이 쓰러진 것인데, 법이 정한 공정계약만 지켜져도 상황은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저가낙찰제 역시 전문건설업계에 커다란 짐이다. 최처가낙찰제로 공사를 따낸 원청사가 하도급을 줄 때 줄어든 수익을 벌충하기 위해 또다시 저가 발주를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게 이 이사장의 설명이다. 그는 "최저가로 받는 공사에 전문건설업체는 또다시 최저가로 입찰해야만 해, 원청사와의 계약은 사실상 '노예문서' 수준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원청사에 밉보이지 않으려고 밑지는 공사도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맡는 하도급 계약이 횡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심지어 공공 발주공사에서도 표준하도급계약서를 쓰는 경우가 드물다. 이 이사장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일부 기관을 제외하고는 공공이 발주하는 공사에서도 표준하도급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는 10%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공공기관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표준하도급계약서가 자리를 잡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강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 이사장은 "최근 서울시가 공정 하도급에 관한 조례를 개정하면서도 '부당 계약을 근절하고 동반성장을 유도하기 위해 표준하도급계약서를 작성하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 역시 구속력이 없는 권장사항"이라며 "제도가 실효를 거둘 수 있도록 정부나 국회가 나서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건설 하층기업이 이대로 몰락한다면 향후 더 큰 사회ㆍ경제적 비용이 발생한다"며 "건설업계의 생태계가 붕괴되기 전에 정부가 앞장서 업계 불공정 계약을 근절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생산적 건설 복지"라고 힘주어 말했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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