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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길 위의 이야기] 이 풍경을 시 쓴답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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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길 위의 이야기] 이 풍경을 시 쓴답시고

입력
2012.04.0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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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기차를 탔다. 구포역에서 한 시인과의 미팅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나름 시인이랍시고 후미진 동네의 낡은 역이라면 감흥을 일으키곤 하는 나, 난생 처음 발 디뎌본 구포는 두리번거릴 필요도 없이 작디작았다.

그렇게 악수를 나눈 시인과 이리 갈까 저리 갈까 고심 끝에 찾아 들어간 곳이 있었으니 역 앞에 자리 잡은 한 다방, 그러고 보니 어릴 적 읽었던 문학작품 속 '역전앞 다방'이란 말에 환상깨나 가졌던 모양이다. 해가 아직 중천인데 다방 안은 어둠침침했고 각 테이블마다 자리를 꿰고 앉으신 분들의 대부분은 노인이라 부름직한 어르신들이었다.

쌍화차와 대추차가 여기저기 주문 메뉴로 불리는 가운데, 궁둥이가 실하니 딴 놈이 생겼느니 별별 음담이 오가는 가운데 쟁반을 들고 이리저리 오가는 한 여인, 마담 아줌마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그녀가 안내하는 구석자리를 마다하고 그녀가 기대하는 바와 달리 정중앙 테이블에 마주앉았다.

서로의 안부 묻기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시집 교정지를 꺼내 들춰가며 설전을 벌이는 바,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 시니까 쓸 수 있는 온갖 19금 단어들을 내가 마구 뱉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여자의 윗도리, 남자의 아랫도리를 가지고서 말이다. 어느 틈에 고요해진 다방 안, 여자 복싱 경기가 한창 중계중인 텔레비전 너머 마담 아줌마가 내게 물었다. 뭐 하시는 분이세예? 끝끝내 그저 웃지요, 가 나였다.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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