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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포로 딸 가족 등 탈북자 5명 입국/ 中, MB정부 들어 첫 한국행 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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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포로 딸 가족 등 탈북자 5명 입국/ 中, MB정부 들어 첫 한국행 허용

입력
2012.04.03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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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비리에 귀국한 것으로 알려진 국군 포로 백종규씨의 둘째 딸 영옥(47)씨와 그의 가족은 귀국 과정처럼 북한에서도 곡절 많은 생애를 보냈다.

1951년 한국 전쟁 당시 국군 일병이던 아버지 백종규씨는 북한 인민군에 의해 포로가 돼 함경북도 온성으로 끌려갔다. 이후 백씨는 아오지 탄광에서 고된 노역에 시달리다 1997년 "시신이라도 고향(경북 청도)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사망했다.

이후 큰딸 영숙(55)씨는 3차례 탈북 시도와 2차례 강제 북송, 딸(31)과 생이별을 거치는 천신만고 끝에 2004년 아버지의 유골을 안고 입국했다. 백씨는 국군 포로 유해 송환 1호의 주인공이 됐다.

영숙씨가 탈북에 성공하자 북한에 남아있던 둘째 딸 영옥씨 가족은 더욱 참담한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북한 당국에 의해 반동분자로 낙인 찍혀 갖은 고초와 핍박을 받았다. 견디다 못한 영옥씨는 딸 이일심(당시 15세)양과 아들 이강민(당시 11세)군을 데리고 2009년 5월 북한을 떠나 중국 잠입에 성공했다.

영옥씨는 같은 해 6월 베이징 한국 총영사관에 들어갔지만 3년이 다 되도록 중국 당국의 한국행 허가가 떨어지지 않아 좁은 공관에서 세가족이 기거해야 했다.

먼저 입국한 영숙씨는 동생 가족의 입국을 위해 그간 모든 관계 기관을 찾아 다니며 진정서를 내는 등 노력했으나 소득이 없었다. 지난해 6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고 지난 2월 말에는 외교통상부 고위 간부를 면담했지만 "중국 정부 태도가 워낙 강경해 데려올 방법이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이에 영숙씨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메일로 "국립대전현충원에 계신 아버지를 볼 면목이 없고, 영사관에 갇혀 고초를 겪고 있을 동생 가족들 생각에 숨조차 쉬기 어렵다"고 동생 가족의 입국을 호소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외교부 장관 외에도 관련 부처 관료들이 중국과의 접촉에서 이 문제를 현안으로 다뤄왔지만 중국 측의 태도가 워낙 완강해 별 진전을 보지 못했다.

특히 지난해 7월 김관진 국방장관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이례적으로 시진핑(習近平) 국가 부주석에게 이들 문제를 언급하며 조기 송환을 요청했다.

이어 이 대통령이 지난 1월 후진타오 국가 주석과의 회담에서 이 문제를 거론했고, 지난달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기간 중 양국 정상회담에서도 탈북자 문제가 의제로 제기됐다.

탈북자 문제에 철저히 북측 입장을 대변하다시피 한 중국이 태도를 바꿔 이들의 한국행을 용인한 데에는 최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계획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중국 등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북한이 로켓 발사 일정을 예정대로 진행하자, 더 이상 북측 입장에만 설 수 없다는 외교적 판단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중국이 국제 사회에서 파괴자로 인식되는 북한에 대해 무조건 편을 들 수 만은 없다는 판단이 선 것 같다"면서 "앞으로 탈북자 문제에 대해서도 중국이 보다 전향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신정훈기자 h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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