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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채 투자 늘리는 외국인… 말리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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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채 투자 늘리는 외국인… 말리는 정부

입력
2012.04.03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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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중순 서울 시내 모 호텔. 기획재정부와 스위스 중앙은행 관계자가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 최근 매수 규모를 조금씩 늘리고 있는 스위스 중앙은행의 한국 국채 투자가 논의 주제였다. 스위스 측은 "올해 시험적인 국채 매입을 거쳐 내년부터 정식 채권투자 포트폴리오에 포함시켜 한국 국채에 대한 투자 규모를 늘려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외국인들의 한국 국채 순매수 현상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며 에둘러 '투자 자제'를 요청했다.

스위스 중앙은행은 유럽 투자은행(IB)들이 투자 포트폴리오를 짤 때 롤 모델로 삼는 곳이다. 이런 권위 있는 선진국 중앙은행이 한국 국채에 투자하려는 걸 정부가 앞장서 말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화 자산의 인기가 높아지는 건 꺼릴 일이 아니지만, "결국 빚은 빚"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소규모 개방경제 체제에서 위기 때마다 외국인 투자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충격을 여러 번 경험한 것도 외국인들의 과잉 투자에 몸을 사리게 만든 요인이다. 정부 입장에선 가급적 적정선에서 외국인 채권투자를 관리하는 게 정답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세계적인 유동성 홍수 속에 우리나라 국채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정부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2일 "일부 선진국 중앙은행과 국채 투자의 정보 공유에 대한 신사협정을 맺었고 일부는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투자정보 공유에 어떤 룰이나 전례가 없어 공식 협정보다는 신사협정 수준에서 협력키로 했다"면서 "투자 전에 정보를 교환한다는 게 꼭 맞는 말은 아니지만, 사전 공지도 하고 일정한 틀 안에서 서로 공유하는 노력을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정부는 올 들어 스위스, 노르웨이 등 유럽은 물론 일본, 중국, 태국,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국가의 중앙은행들과 잇따라 비공개 접촉을 가졌다. 한 고위 관계자는 "(상대국들과 만나) 국채 매입 때 시기와 규모 등을 사전에 공지하는 선에서 대략적인 공감대를 이뤘고, 이를 신사협정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이런 움직임은 외국인 국내 채권 보유규모가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86조7,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던 투자규모는 올 들어 다시 최대치에 육박(2월 말 현재 86조4,000억원)하고 있다. 특히 최근 수년간 중국, 태국,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중앙은행들의 투자가 급증하면서 외국인의 국채투자 규모만 2월 말 기준 62조4,000억원에 달한다.

정부는 특히 스위스 등 선진국 중앙은행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스위스 중앙은행이 한국 국채를 투자항목에 공식 편입시킬 경우, 유럽을 비롯한 국제 투자회사들이 한국 국채 투자를 따라 늘리는 '유인 효과'를 부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2일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긍정적으로 상향 조정해 향후 등급이 '더블A' 수준으로 오를 가능성이 커진 것도 투자유입 측면에선 불안 요소다. 국제 투자회사들의 국제결제은행(BIS) 비율 산정 때 반영되는 보유자산의 위험가중치가 지금보다 한 차원 낮아지면 한국 국채의 투자 매력은 더욱 강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구두약속' 수준의 신사협정만으로 국채 투자 열기를 잠재우긴 어렵다는 점이다. 과도한 국채 투자는 일시에 빠져나가는 위험뿐 아니라 평소 국내 채권 가격을 높여(채권금리 하락) 한국은행의 통화정책도 무력화시키는 부작용이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조만간 추가적인 채권투자 억제장치를 내놓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작년 상반기 재정부는 외국인 채권투자 억제방안을 추진했으나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등 국제 금융시장 불안으로 보류한 바 있다.

우선 거론되는 방법은 정부의 대응 여력을 키우는 것. 가령 외국 중앙은행이 원할 경우 국채를 신규 발행해 팔고, 정리해 나갈 때는 정부가 이를 사들이면 외환시장의 충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선 지금처럼 국회가 정부의 국채 발행물량을 일일이 승인하는 대신, 미국처럼 연간 국채규모 순증가분만 허가하는 식으로 정부의 채권 발행 재량권을 늘려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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