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에 소송을 내지 않고도 의료사고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8일 문을 연다. 1988년 관련 법이 처음 발의된 후 지난 해 국회 입법이 마무리 됐으며, 3일 국무회의에서 시행령이 의결됨으로써 24년 만에 결실을 맺게 됐다. 환자들과 의사들의 숙원이 이뤄졌다는 평가다.
추호경(65) 의료분쟁조정중재원 초대 원장은 이날 3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수수료 몇 만원만 내면 감정과 조정을 거쳐 의료분쟁을 해결해 준다"며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0년 기준으로 민사 소송과 한국소비자원 피해구조, 대한의사협회 공제회 등을 통한 보상을 모두 합친 의료사고는 3,478건이다. 소송으로 해결하려면 변호사에게 소송 착수금으로 최소 500만원, 성공보수로 승소액의 10% 가량을 지급해야 한다. 더구나 확정판결이 나기까지 평균 2년 2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게 현실이다.
중재원은 이런 의료소송의 고단함을 상당부분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추 원장은 "조정신청이 들어오면 해당 의사에게 진료과정을 청취하고, 5명의 감정위원들의 감정 후 조정위원 5명이 배상 규모 등을 최종 결정해준다"며 "결론도 3개월 안에 내도록 돼 있다"고 설명했다. 수수료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기본 몇 만원에서 배상청구 가액에 따라 많아도 10여만원을 넘지 않도록 기획재정부와 협의하고 있다는 게 추 원장 전언이다. 8일 이후 발생한 의료사고부터 신청할 수 있다.
"법원에서는 의료사고 감정을 의사 한 명에게 받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나 중재원의 감정위원은 사건 당 5명으로 의사 2명, 법조인 2명, 비영리 사회단체 추천 1명입니다. 더 신뢰할 수 있는 감정을 받을 수 있게 된 거지요."
추 원장의 이런 낙관적인 기대와 달리 의료계를 중심으로 벌써부터 잡음이 상당하다. 의사협회 등은 "의사가 아닌 비전문가가 감정위원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불만이다. 추 원장도 기류를 아는 듯 했다. "만약 의사가 전부, 혹은 과반 이상이라면 환자 누가 결과를 받아들이겠어요. 또 감정위원 의사 2명이 나머지 감정위원 3명 중 한 명 정도는 설득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감정이 아니겠습니까." 의사만의 감정이 아닌, 평균적인 일반시민도 납득할 감정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의협의 반발로 일부 상임감정위원 선정에 차질이 있지만, 상임ㆍ비상임을 포함해 이미 조정위원 52명과 감정위원 48명 선임은 끝냈다.
환자가 조정을 신청해도 의사가 거부할 경우 사건은 소송으로 가게 돼 있다. 추 원장은 "의사들이 참여를 안 한다면 피해를 입는 것은 의사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며 "법의 근본취지가 의사들이 의료분쟁에 시달리지 않고 의료에 전념하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추 원장은 "실적에 연연하지 않고 들어오는 사건 하나하나를 내실 있고 빠르고 공정하게 처리하는 게 목표이며, 초대원장으로서 의료분쟁의 합리적인 길을 열어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서울지검 형사1부장, 대전지검 천안지청장 등을 거친 검사 출신으로 보건의료 분야 전문 검사로 활약했다. 변호사 개업 후 보건복지부 건강보험분쟁조정위원회 위원, 대한의료법학회 이사, 대한보건협회 이사 등을 맡았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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