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이 우려했던 대로 정치게임으로 흐르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당초 장진수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이 은폐와 증거 인멸의 구체적 정황을 폭로하고, 뒤이어 방대한 사찰대상과 내용이 공개되면서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을 때까지만 해도 사건의 진행방향은 분명해 보였다. 청와대를 포함한 권력주변의 사찰 및 은폐 관련자들을 샅샅이 밝혀내 책임을 묻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경계를 삼는 것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본인이 직접 나서 한 점 의혹 없는 진실 규명을 다짐하고 책임자로서 사과토록 촉구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청와대가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기는커녕 전 정권에서도 같은 일을, 심지어 더 광범위하게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나서면서 사안이 변질되기 시작했다. 이후는 보다시피 서로간의 무차별적인 난타전이다. 민주당 측은 이미 공개된 자료들을 반복하면서 여론몰이에 더 신경 쓰는 모양새고, 청와대 측은 연일 전 정권을 끌어들여 자신들의 잘못을 희석하려 들고 있다. 수사방식을 갖고도 다툼을 벌이는 걸 보면 양 정치세력의 목표가 과연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의심하게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오직 정확한 사실뿐이다. 청와대측은 "참여정부 시절의 광범위한 사찰자료들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고, 민주당 측은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근무자 2명이 각기 대량의 사찰보고서를 은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달리 망설일 것도 없다. 이들 자료의 실재 여부와 내용부터 확인하는 것이 마땅한 순서다. 자료의 제시 없이 말로만 "불법세무조사 내용까지 있다"고 은근히 을러대는 청와대의 태도는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풀어보려는 얕은 인식을 드러낸 것에 다름 아니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은 정치적 게임을 통해 승부를 겨루는 대상이 아니다. 국가의 장래를 걸고 정공법 수사를 통해 진실을 규명해야 하는 엄중한 사건이다. 뻔히 속 들여다보이는 물타기나 위협은 그만두고 누구든 있는 모든 자료를 공개하라. 국민 앞에 모든 불법행위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 이번 사태 수습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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