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5일(현지시간), 스티브 잡스가 사망하자 애플의 미래를 보는 시각은 크게 엇갈렸다. 한 쪽에선 '이제 애플은 씨 없는 사과가 될 것'이란 비관론을 제기했고, 다른 한편에선 '그래도 애플은 애플'이란 낙관론을 폈다.
잡스가 떠난 지 반년이 흐른 지금, 애플에선 잡스의 색깔을 빼는 움직임이 서서히 감지되고 있다. 물론 '애플=잡스'의 등식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신임 팀 쿡 CEO는 결코 손댈 수 없을 것 같았던 것들까지도 하나 둘씩 손대고 있는 상황이다.
가장 주목할 건 '배타적 천재'였던 잡스와 달리, 팀 쿡은 '천재는 아닐 지 모르지만 현실주의자'란 사실이다.
우선 주주배당. 주식회사가 이익을 내면 주주들에게 수익을 돌려주는 건 당연하지만, 잡스는 생전에 '배당은 미친 짓'이라며 17년간 무배당원칙을 고수했다. 그러나 팀 툭은 지난달 주주들에 대한 현금배당을 과감히 결정했다.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 한번도 중국을 '공식'방문한 적이 없었던 잡스와 달리, 팀 쿡은 지난달 말 중국을 전격 방문해 '인권사각지대'비판을 받고 있는 팍스콘 공장을 직접 찾았다. 팀 쿡은 팍스콘 문제를 그냥 방치하는 한 애플의 도덕적 이미지까지 추락될 수 있다고 판단했으며, 이 점에서 '남의 얘기'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잡스와는 대조적으로 그는 매우 현실적 행보를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팀 쿡은 삼성전자와의 특허전쟁도 현실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미국 경제전문지인 <비즈니스 위크> 는 최근호에서 "팀 쿡은 적을 모두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리려고 했던 전임자(잡스)와는 다르다"고 전했다. 잡스였다면 삼성전자와 전쟁을 끝까지 끌고 갔겠지만, 팀 쿡은 결국 협상을 택할 것이란 관측이다. 비즈니스>
이처럼 경영에선 확실히 팀 쿡이 자기 색깔을 내고 있지만 제품에 관한 한 여전히 잡스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잡스 사망 이후 나온 두 신제품, '아이폰4S'나 '뉴 아이패드'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팀 쿡 아닌 잡스의 작품이란 평가를 받았다.
실적도 불안한 모습이다. 2일 미국 투자기관인 캐너코드 제누이티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세계 스마트폰 판매량에서 애플은 3,260만대에 머물러, 4,100만대를 판 삼성전자에 밀렸다. '잡스 애도 효과'덕에 작년 4분기에 되찾았던 1위 자리를 한 분기 만에 다시 빼앗긴 것. 그러다 보니 시장에선 잡스 효과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의 애플 실적에 벌써부터 의구심을 표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곧 출시될 '아이폰5'가 팀 쿡에겐 최대의 시험대가 될 것"이라며 "디자인과 기능에서 얼마나 자기 색깔을 담을지, 그 결과 실적은 어떻게 나타날지에 따라 팀 쿡의 운명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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