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 감찰을 원했다면 감사원을, 동향 정보가 필요했다면 국가정보원을 통하면 될텐데 역대 정부는 왜 국무총리실 직속의 공직윤리지원관실 같은 조직이 필요했을까.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으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초법적인 업무행태가 드러나면서 새삼 제기되는 의문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 설치 근거가 됐던 대통령령인 '국무총리실과 그 소속기관의 직제'는 공직자 기강 확립과 제도 개선을 위한 부조리 실태 진단 등을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주된 업무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행정기관과 공무원의 직무를 감찰해 행정 운영을 개선한다'는 역할을 법률로 부여받은 감사원과 업무 영역이 사실상 겹치는 셈이다.
그런데도 업무가 중복되는 기구를 별도로 설치한 것은 감사원의 법적 지위와 무관하지 않다. 감사원은 '대통령에 소속되지만, 직무에 관해 독립 지위를 가지고, 조직 운영에 있어 독립성이 최대한 존중돼야 한다'고 법률에 명시돼 있다. 감사원은 청와대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조직이 아닌 것이다. 청와대가 감사원만한 규모와 지위에는 못 미치지만 손쉽게 부릴 수 있는 별동대 격으로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설치한 것은 이런 맥락 때문이다.
국정원도 고위 공직자 동향 및 인사 관련 스크린(점검)을 담당해 왔다. 하지만 국정원은 법률로 정치참여가 금지돼 있다는 한계가 있다. 청와대가 공식적으로 움직이기엔 어려운 조직이라는 말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중앙정보부, 안전기획부를 거치면서 사찰기관이라는 오명을 멍에로 지고 있는 국정원을 민감한 정보 수집에 동원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후폭풍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역대 정부가 총리실 산하에 암행감찰 조직을 둬온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특히 청와대 직속으로 암행감찰 기구를 설치할 경우 문제가 생길 때 대통령에게 바로 책임이 돌아갈 수 있어 국무총리 산하에 조직을 두되 사실상의 조직 운영은 청와대가 맡는 방식을 택해왔다.
실제로 1989년 설치된 국무총리실 소속 제4행정조정관실은 1998년까지 공직 사정을 담당했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규모를 축소했지만 조사심의관실이란 이름으로 운영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2월 출범시 작은정부 모토를 내세워 조사심의관실을 폐지했지만, 촛불사태를 겪은 뒤 같은 해 7월 부랴부랴 공직윤리지원관실이라는 이름으로 조직을 부활시켰다.
하지만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반정권 세력의 발본색원을 요구한 청와대와 이를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받아들인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을 비롯한 비선 라인의 도덕불감증이 합쳐지면서, 공직자와 민간인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 사찰 조직으로 변질된 것으로 보인다. 한 검찰 관계자는 "수사에 비견되는 예민한 업무를 수행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각 점검팀에 합법과 탈법을 구분해줄 법률 전문가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며 "결국 이번 사태는 기대치가 높았던 청와대와 그것을 오버해 버린 공직윤리지원관실의 합작품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권지윤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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