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4ㆍ11 총선 판에 '현정부의 민간인 불법 사찰 관련 대규모 문건 공개'라는 대형 변수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새누리당이 일방적으로 'KO패 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여권이 지난 주말 "노무현 정부에서도 사찰이 있었다"고 반격에 나서고, 사찰 파문 정국이 전ㆍ현 정권 간 이전투구 식 폭로전으로 흐르면서 기류가 조금 달라졌다.
전문가들은 2일 "사찰 논란이 정권 심판론에 불을 댕겨 새누리당에 악재가 될 것은 분명하다"고 진단했다. 사찰 변수가 수도권의 여야 경합 지역들의 판세를 대부분 '여당 열세'로 바꿔 놓을 것이라는 점에도 이견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사찰 이슈가 전체 선거 판세를 뒤흔들 정도의 큰 영향력을 미칠지 여부에 대해선 견해가 엇갈렸다.
새누리당이 전 정권들을 사찰 논란에 끌어들이는 동시에 '사찰 주체'인 청와대ㆍ정부의 책임론을 강하게 제기한 전략은 어느 정도 먹혀든 것 같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여론분석센터 부소장은 "사건이 진실 공방으로 흐르면서 사찰 이슈가 선거에 미치는 파괴력이 확실히 반감됐다"고 말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실장은 "새누리당이 정부와 선을 그음으로써 중도보수층의 이탈을 최소화하는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이어 심재웅 한국리서치 상무는 "후보들의 인물 경쟁력과 지역구별 사정 등 다른 변수들도 있는 만큼 사찰 논란이 총선 승패를 좌우할 정도는 아니다"면서 "중도층은 야권의 '대통령 하야ㆍ탄핵 주장' 등 지나친 정치 공세에도 반감을 느끼기 때문에 부동표가 일방적으로 야권에 쏠린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도 "사찰 파문이 아직까지는 민주당 후보들에게 플러스 효과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면서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반면 "정권 심판론이 다른 모든 선거 이슈를 빨아들이면서 결국 일방적 선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았다. 윤희웅 실장은 "새누리당에 반대하면서도 야권의 행보에 실망해 무당파로 남아 있던 유권자들의 정권 심판 정서가 폭발하는 조짐이 있다"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젊은이들이 민감해 하는 연예인 사찰 의혹까지 터진 것이 결정적"이라며 "사찰 논란이 확대될수록 정권 심판론도 커지는 것이 여권의 딜레마"라고 말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워터게이트 사건이 파국으로 치달았던 선례에서 보듯이 새누리당이 전략적으로 무조건 사과부터 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사찰 논란이 투표율에 미칠 영향에 대해선 "젊은 층과 중도 층의 반(反) 이명박 정부 정서를 자극해 수도권 격전지에서 투표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관측과 "여야 정치권과 권력층 전체에 대한 냉소과 환멸이 심해져 투표율이 오히려 떨어질 것"이라는 의견이 맞섰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허경주기자 fairyhk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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