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문건 공개로 정치권의 난타전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검찰 수사도 전방위로 보폭을 넓히며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수사 초점은 2010년 7월 불법사찰 수사에 대비한 증거인멸 행위에 맞춰져 있다. 재수사의 도화선이 된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의 녹취록에도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이 장 전 주무관에게 자료 파기를 지시하며 청와대 개입 사실을 언급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자신을 '몸통'이라고 규정하면서, 1차 검찰 수사 때 밝혀지지 않은 증거인멸의 윗선은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났다. 이 전 비서관과 최 전 행정관 등을 법정에 세울 경우 검찰 입장에서도 진일보한 성과다.
하지만 이 전 비서관이 미리 자신이 몸통이라며 방어막을 쳤다고 해서 그가 증거인멸을 지시한 정점에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디가우징(하드디스크 파기) 등을 동원한 조직적이고 치밀한 행위는 전문가 그룹과 조력자가 개입되지 않고는 이뤄지기 힘들다는 게 수사팀의 기본 입장이다.
사건 수습 과정에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개입했다는 정황과 증언들이 쏟아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 전 행정관이 장씨에게 "(법정에서 사실을 말하면) 민정수석실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언급했고, 류충렬 전 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도 장씨에게 5,000만원을 건넬 때 "민정수석실 장석명 공직기강비서관이 마련한 돈"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민정수석을 지낸 권재진 법무부장관의 개입 의혹이 계속 제기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최근 공개된 사찰문건은 검찰 수사를 사찰 행위 전반으로 확장시켰다. 검찰이 1차 수사 때 밝혀내지 못한 새로운 불법사찰 사례를 찾아낼 경우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증거인멸 수사보다 파괴력이 더 강할 수 있다. 문건에서 확인됐듯 민간인과 정치인을 사찰한 사례가 다수 있었기 때문에 '불법' 사례를 찾아낼 가능성은 충분하기 때문이다. 검찰도 언론에 공개된 사찰문건에서 수사 단서가 될 만한 내용이 있는지 재차 검토하고 있으며, 장진수 전 주무관의 전임자인 김경동씨의 USB도 확보해 정밀 분석하고 있다.
이인규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이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와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을 사찰한 책임을 지고 법정에 섰지만, 청와대 개입 의혹이 불거진 이상 배후에서 사찰을 기획하고 보고받은 윗선을 찾아내는 것도 검찰이 풀어야 할 숙제다. 검찰 관계자는 "배후를 캐다 보면 불법사찰과 증거인멸이 한 뿌리에서 시작된 사실이 드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자백이 없으면 뿌리 찾기도 어렵다고 보고 우선 장 전 주무관에게 입막음용으로 전달된 돈의 출처를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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