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가 A(59)씨는 올 1월 자신의 사망 보험금으로 10억원을 받을 수 있는 종신보험에 피보험자로 가입했다. 계약자와 수익자, 납입자는 모두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는 아들(32)로 했다. 매월 납입 보험료 600여만원은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는 아들명의로 이체한다. 그는 "내가 사망하면 상속세를 내야 하는데 소유하고 있는 건물을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종신보험에 가입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부자들 사이에 고액 종신보험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종신보험이 본래 남은 가족의 생계수단 및 미래대비라는 성격이 강하지만, 부자들에게는 상속수단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서울에서 건물 소유한 사람 가운데 고액 종신보험 하나씩 들지 않은 사람은 없을 정도"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웬만한 대기업 직원의 월급을 상회하는 월납 수백만원의 보험료를 기꺼이 낸다.
2일 생명보험업계에 따르면 2월말 기준 사망보험금으로 10억원 이상을 보장하는 종신보험에 가입한 고객수는 6개 보험사에서 1만명을 웃돈다. 이는 업계에서 추정하는 전체 종신보험 가입자 700만명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말 그대로 '슈퍼리치'들이다.
최상위 부유층인만큼 가입자 신분은 철저히 베일에 싸여있다. 한 대형 생보사 관계자는 "최우수고객(VVIP)들의 보험 관련 사항은 담당 설계사와 그 관리자 외에는 접속이 차단된다"며 "보험 계약 시 재산사항에 대한 비밀유지 조항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생보사 관계자는 "보험사마다 기준이 다르지만 고액의 종신보험 가입자들의 경우 보험사기 예방 등을 위해 보험사는 가입희망자들이 고액 보험료를 납입할 수 있는지 재정능력을 사전 평가한 뒤 받아들인다"고 귀띔했다.
10억원 이상 보장상품에 가입하는 부유층은 증가 추세다. 대부분이 상속세 절세를 노리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는 "사망보험금이 10억원 이상이라면 십중팔구 상속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며 "사망보험금으로 상속세를 미리 마련할 수 있다는 소문이 부유층 사이에 확산되면서 가입 고객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슈퍼리치들이 생각하는 절세 효과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리나라 부유층 재산 대부분이 부동산에 몰려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건물주가 사망할 경우 상속자는 건물을 처분해 상속세를 내야 하는데, 부동산경기 침체 등으로 건물 가격이 떨어질 경우 시가보다 싸게 팔아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 또 건물은 하나인데 자녀가 3~4명일 경우 형제ㆍ자매 간의 재산다툼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 이럴 때 사망보험금으로 상속세를 대체하게 되면 건물을 고스란히 자식에게 물려줄 수도 있고, 재산다툼 여지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종신보험의 계약자와 보험료 납입자, 수혜자(수익자)가 피보험자(사망자)가 아니고 자식일 경우 사망보험금에도 상속세가 면제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아버지를 피보험자로 하고 아들이 보험 계약은 물론 보험료까지 납입했다면 아버지 사망 시 나오는 보험금은 과세 대상이 아닌 것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 같은 제도를 이용해 아버지가 자신의 건물 관리인으로 아들을 취직시키고 그 월급으로 보험료를 납입하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이때 아들의 생활비는 주로 아버지가 주는 용돈인데, 용돈은 과세 기준이 애매해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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